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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r 25. 2021

어쨌든, 화천

내 마음의 고향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진다면 어딜 가고 싶어?"

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리라.

"화천이요."

"은퇴 후 어디에 살고 싶어?"라고 물어도 역시 화천. 화천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많은 사람이 화천을 '군대'나 '산천어 축제'로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겨울보다 봄, 여름에 이곳에 더 발길이 가곤한다. 이곳에 '산소길'이라는 이름의 자전거 코스가 꽤 근사하게 짜여있기 때문이다. 코스 초입에 위치한 붕어섬 안내소에서 만 원을 내고 자전거를 빌려 신나게 페달을 밟다 보면 강을 따라 인적이 드문 자전거 길이 이어진다. 한가롭게 봄볕을 맞으며 달리다 보면 야트막한 가설 다리가 나오는데, 그곳을 건너면 산소길의 백미인 '숲으로 다리'를 만날 수 있다.


(c) http://www.sjzine.com


약 삼 킬로미터 가량의 다리가 강을 따라, 물 위에 세워져 있다.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거닐다 보면 푸르다 못해 시커먼 강의 깊이가 두렵기도 하고, 그런 물 위를 걷는듯한 신비한 기분마저 든다. 이 다리는 화창한 날씨에 거닐어도 멋지지만, 안개가 낄 무렵에 더 멋지다는 매력이 있다. 이십 대 중반이었을 시절, 대책 없이 화천으로 떠났다가 비를 맞으며 이 다리에서 만난 물안개의 풍경에 아직도 '화천 앓이'를 할 정도로 그 이미지는 강렬했다.


'숲으로 다리'를 다 건너면 이젠 정말 숲이 나온다. 강기슭,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말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산책로는 끝나고 다시 붕어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가 나온다. 그러면 산책 전의 나와 산책 후의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스쳐 지나간 숲의 손길이 나를 어루만졌기 때문일까.


자전거를 반납하면 낸 금액만큼 지역 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그러면 나는 그 상품권으로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 배를 채우고 서울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에 휙, 몸을 실었다. 화천 터미널이 산책로와 꽤 가까워서, 차가 없어도 마치 옆동네 나들이를 가듯, 위안이 필요할 때면 수시로. 화천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곤 했다. 그곳에서 실컷 달리고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돌아오면 걱정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당시 갓 조성한 자전거 길의 잔디와 나무가 듬성듬성 맨땅을 드러내던 곳. 민박과 일반 농촌 가정이 강변을 따라 별 차이 없이 섞여 있던 곳. 그곳의 풍경은 얼마나 변했을까. 물안개 피어나는 파로호 산책길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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