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한결 따뜻해진 봄 날씨에 주말에는 뭘 할까 고민하며, 버스를 기다리던 낮 열한 시 반. 버스가 두 정거장 전이라는 안내를 보고 승차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불현듯 주머니 속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뭐지?
원생 가족 확진... 무증상 양성... 조기 귀가...
같은 유치원에 두 아이가 함께 다니고 있었기에 단체 카톡은 쉬지 않고 울려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원아 음성... 재검... 자가 격리...
오후 출근이 예정되어있던 회사에 급히 소식을 전하고, 발길을 유치원으로 돌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원에 도착하니 아침까지 아이들이 뛰놀던 앞마당엔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로 가득 찬 상황. 아이들을 마이크로 부르며, 끌고 내려오듯 급하게 인솔하는 원장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여쭤볼 여유는 없어 보였다.
첫째와 같은 반 아이의 가족이 확진이라는 말에 첫째만이라도 검사를 하자 싶어 선별 검사소로 바로 향했다. 가는 중에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온 거야?"
허겁지겁 하원 하느라 아이들에게 설명해줄 겨를도 없었겠지.
"그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치원 창문으로 쳐들어 왔대. 그래서 집으로 가야 한대."
"힝~ 오늘 간식은 샌드위치였는데~"
식단표가 인생의 낙인 첫째의 코와 입에 면봉을 찔러놓고 집으로 돌아와 기다리다 보니 또 문자가 왔다. 의심 원아의 신속항원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으나 PCR 재검 후 양성이니 모든 원생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소식. 이번엔 둘째를 데리고 밤에 검사를 받으러 나섰다. 검사 면봉의 이질감에 아이들의 비명이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다행히 다음날 결과는 전원 음성이었다.
공포가 한풀 꺾이자 이성이 돌아왔다. 당연히 이번 주는 집에 있어야 할 거고, 다음 주는 어떻게 하지? 문센 발레는? 남편 출근은? 내 출근은?? 선생님은 통화로 첫째만 격리 대상자이지만 자매인 관계로 둘째도 같이 등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2주가 날아가버렸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문화센터도, 유치원비도 모두 두 명분. 아마 휴가도 써야 할 테다. 현재 상황을 대강 추정해보면 그집 아빠의 자가격리 기간에 그 아이가 등원을 했다는 건데, 그쪽은 지키지 않아 백 명이 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곤 우리 더러는 지키라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결석하거나 먼저 나간 아이를 캐내면 뻔히 누군지 알 수 있는데 단톡 방에 미안하다는 한 마디조차 없다니.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질 무렵, 마음속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너는? 너는 그 상황에서 안 그럴 거라고 자신해? 유치원 등원 중지 수칙을 어겼다는 것도 결국 추측일 뿐. 나였어도 온 가족이 확진인 상황이라면 사과할 경황이 없을 테고, 설사 마음이 있어도 감히 '우리 애가 확진자요' 하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사고였을 뿐이다. 애초에 사고인데 사과할 이유도 없다. 나는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분노를 퍼붓고 있었다.
'한 사회의 인권이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일이 이토록 쉬울 줄이야. 나의 분노는 지금 누구를 향해 흐르고 있을까. 이 주간의 불편함 속에서 그 분노가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