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신입 일기_10
3일 연휴를 보내고 출근하니 이상하게 사무실이 조용하다. 내 자리는 편집/디자인팀과 동떨어진 곳이라 원래 소음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날은 사무실 문 너머로 들리던 잡담이 전혀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다른 한쪽에선 영업팀과 관리팀이 사뭇 심각하게 회의 중이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옆자리 영업 이사님의 전화기는 곧바로 불이 난다. 배본사, 인쇄사, 스티커 제작, 납품 업체 등등... 모든 일이 그의 진두지휘 아래 굴러갔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작업 견적을 의뢰드리려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ㅇㅇ님 저희 도서에 오류가 있어서요..."
그가 전화를 세 통 돌리고 한 번 머리를 싸매기를 반복할 때, 그 틈을 노려 무슨 일인지 물었다.
"오타난 거예요? 저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알려주시면 안 돼요?"
책 내지를 펼치자 본문 한가운데 텅 빈 여백이 보였다. 명백하게 빠진 문장 하나. 나름 야심 차게 기획한 책이었는데 신간배본하자마자 이게 무슨 변이람.
다시 전화를 돌리느라 바쁜 이사님에게 더는 묻지 못하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다른 분에게 슬쩍 떠보았다.
"이번에 사고 어떻게 된 거예요?"
같은 대답이었다. 오타 사고가 났고, 우리 측의 잘못이 맞기 때문에 영업팀에서 수습을 하고 있다는 것. 정확히 사고의 원인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편집 혹은 디자인 과정의 문제겠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내가 이전에 다녔던 제조업계는 이런 문제가 터지면 대응이 사뭇 달랐다.
사장실의 고성이 한 시간 넘게 지속되고,
실컷 깨지고 나와서는
니 탓이니 내 탓이니 책임과 뒷수습을 서로 떠넘기는,
그런 뒷골 땡기는 모습
그런 게 문제 터졌을 때 보통의 회사 모습 아닌가? 이렇게 조용하게 넘어갈 리가 없잖아!
출판사 생활 3년 차인데도 아직 이런 느낌을 가끔 받는다. '흠, 뭔가 다른데? 업계가 달라 그런가?' 갸웃하게 만드는 순간. 텃세가 없는 분위기, 부하직원에게 눈에 띄게 말조심하는 상사, 존대와 존중이 기본 장착된 오너. 직원들 간의 견제 또한 훨씬 덜했다. (물론 납기 일정과 추가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영업팀 vs 그 일을 받아야 하는 편집팀 사이 갈등이 있긴 했지만, 심했다면 오늘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왔을 리가 없으리라.) 굳이 비교하자면, 이직 전 10년 넘게 제조업계에 근무했던 나에게 이곳은 순한 맛에 가깝다.
마냥 출판업계가 최고라는 오해는 마시길. 연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출판업계는 타 업계에 비해 연봉이 짜기로 유명하다.- 여기도 타 업계에 비해 장단점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새삼 내가 많이 다른 업계를 건너왔구나, 하고 깨닫는다. 책임 떠넘기기보다 수습이 우선인 조직, 고성 대신 조용한 해결을 택하는 문화. 이전 회사에서 악마 같은 상사와 극한의 정치질에 지쳤던 내게는 이 점잖은 분위기가 여전히 신기하고 어색하다. 대형 사고가 터진 날도 이렇게 평온할 수 있다니, 이런 문화가 신기한 걸 보니 나는 아직 신입티를 벗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