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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n 07. 2019

#MyRevengeDiary

내가 시한부 인생이라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가족을 종일 부둥켜안고 엉엉 울 테지만 두 달, 혹은 세 달이 남았다면? 나만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그동안 뒷감당 걱정으로 미뤄둔 일을 할 기회다. 가령 복수라든가, 그러니까 복수라든가, 그리고 또 복수라든가.


평범한 소시민이 무슨 원한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 스스로 어쩌지 못해 기억 저편에 생매장한 쓰라린 기억.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나 아직 살아있다는 듯, 그 무덤이 들썩거리곤 한다. 죽기 전에 꼭 해결하고 죽어야 한다.




우선 인스타에 #MyRevengeDiary 계정을 만들 것이다.-있어 보이게 영어로- 복수는 나눠야 더 통쾌하니까. 후엔 3번째 직장의 사수였던 P차장을 찾아갈 것이다. 또 누군가를 착취해 이사까지 올랐다지? 2012년, 그는 밀린 월급 때문에 허덕이는 부하직원을 매일 술자리에 끌고 다녔다. 단둘이 마시는 것도 고역인데 "너는 눈이 졸려 보여. 꼭 성형을 해.", "여기가 애인이랑 자주 오던 술집인데 말이야~"라며 얼평에 불륜 자랑질까지 들어야 했다. 거기에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1차를 끝으로 도망가려는 나를 붙잡고 "노래방 가자아아아앙~"하며 몸을 흔드는 50대 아저씨의 앙탈까지 보여줬다. 욕이라도 해주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렇지만 난 곧 죽을 테니... 하면 되지! P차장 집에 찾아가 이제는 20대가 되었을 자식 앞에서  터뜨려줘야지.

“월급 인질로 여직원 끌고 다니니 재밌으셨어요?

그렇게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시더니 오늘은 집에 계시네요? 애인이 안 놀아 주나 봐요?  

따님도 차장님 같은 멋진 상사 만나서 개고생 하길 기원할게요^^

죽을 때도 가라오케에서 장례식 해라, 이 노래방 죽돌아!

나오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몰래 샴푸 내용물을 제모제로 바꿔 줄 테다. 몇 가닥 안 남은 머리 시원하게 정리하시라고. 그걸 찍어 인스타에 해시태그 달아 업로드!


두 번째로는 2010년도에 근무한 건설회사의 L이사. 대구 본사에서 내가 근무하는 서울 지사로 올라와선 현지처, 애인 운운하며 어수룩한 신입 여직원을 성희롱했더랬다.-내가 자취하는 게 니랑 무슨 상관인데?!?- 그도 모자라 비키니 바에 나만 데리고 갔을 땐, 그 인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만 나온다. 한겨울에 비키니 입은 언니 앞에 앉아 양주를 마시며 나누던 어색한 대화. 다른 남직원들이 픽업했기에 망정이지 3차까지 갔으면 뒷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 분도 대구까지 찾아가야지. 가서 사무실 직원들 앞에서,

“순진한 여직원 가지고 노니까 재밌었어요?

넌 머릿속에 그거밖에 없으세요? 어떻게 설렁탕을 먹으면서 음담패설을 하지?

설명 좀 해봐요. 왜 여직원 데리고 비키니 바를 간 거예요? 그것도 법인카드로?

남들이 이사님, 이사님 하니깐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이 쉬레기야!”

라고 개망신을 줘야지.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비키니를 입혀 대구 시내 한복판에 내려드려야지. 이것도 찍어서 뿌릴 테다. 인스타뿐만 아니라 이 인간 주소록 리스트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명예훼손 걸어봤자, 나는 몇 달 뒤에 죽으니까.


마지막으로는 1998년도, 집 앞 문방구를 하던 아저씨를 만나야지. 몇 달이 걸리더라도, 흥신소를 통해서라도 그 아저씨를 찾아내야지. 그리고 찾아가 뭘 할까…. 욕을 할까, 망신을 줄까, 죽이기라도 할까. 갓 초등학교 들어간 여자아이 주물럭거리는 게 즐거우셨냐 멱살이라도 잡아야겠다. 아니, 야산에 묶어 손톱과 생니를 펜치로 하나씩 뽑아줄까? 하다 보면 미친 여자처럼 울며 웃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어, 나는 몇 달 뒤에 죽으니까.




너무 흔하고 사소해 성희롱을 행하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MyRevengeDiary가 섬뜩한 경고가 된다면 좋겠다. 내가 떠난 뒤 딸이 사는 세상에선 이런 범죄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면 한다. 그러면  안심하며 눈을 감을 수 있겠지.



배경이미지 (c) 영화 '친절한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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