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창을 열지 마세요
미리 언급하자면,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실상 제 일상이지만.
#1. 자주 보던 웹툰 댓글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식당에서 유튜브를 시끄럽게 틀어주지 말라는 내용이 원본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돌아다녀도 욕먹고, 유튜브로 묶어둬도 욕을 먹나' vs '못할 말은 아니지 않으냐 애엄마들이 조심해야지' 운운하며 대댓글이 수십 개를 훌쩍 넘어섰다. 그 날 선 글들을 보고, 댓글을 달고, 반박을 받으며 나는-굳이 말하자면 유튜브를 즐겨 보여주지 않는데도- 뺨을 맞은 느낌이었다. 단지 애엄마라는 이유로.
#2. 백수가 된 기념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책이 워낙 작위적이라는 악명이 있던 터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와 닿는 이야기가 많았다. 친구에게 말을 꺼냈으나 대다수는 보기도 전에 이미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맘충'이라 얘기하는 사람은 없지 않냐며... 인터넷 댓글창을 하나 열어 보여주고 싶었지만 똥냄새는 나만 맡으면 된다는 생각에 접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테이블에 넘어져 크게 울었다. 나는 아이보다 옆자리 테이블에서 찌푸린 채 쳐다보는 눈초리가 신경 쓰였다.
#3. 단톡 방에 영화 이야기를 꺼냈는데 누군가가 페미니즘을 들먹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참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저 영화와 주변 상황이 비슷하다는 말 밖에 한 적이 없는데 페미니즘 전반에 관한 해명을 해야 한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누구로 본 걸까. 메갈? 맘충?
온라인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집단에 대한 비하나 혐오를 쉽게 접한다. 요새 살기가 힘들어서인지 누군가를 밟아야만 자신이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다.-마치 왕따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왕따를 주도하듯-
맨 처음 예의와 논리를 갖추고 시작한 댓글은 갈수록 인신공격, 조롱, 비아냥으로 변질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다면 결코 하지 않을 실수들. 애초 온라인 상에서 대화할 때, 나는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 볼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몇 자 안 되는 아이디로 만났고, 어떤 견지를 지니고,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 그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넬처럼 얄팍한 허구의 인물을 가져다 놓고 그 인물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너는 애 키우는 여자니까 밖에서 시끄럽게 유튜브 틀어주겠지?"
"너는 애 안 키우는 미혼 남자니까 기혼 여성을 무조건 욕하겠지?"
가리키는 손가락이 정확히 내가 아닌 허구의 인물임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게다.
살아남기 위해 남을 눌러야 하는 상황이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마냥 참고 있기엔 내가 소중하다. 나는 그저 내 위치-여성이자 딸 둘 엄마-에서 의견을 쓸 뿐, 가능하면 인터넷 기사의 댓글은 안 열어볼 작정이다.-브런치는 제외입니다!ㅋ- 누구 말마따나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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