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자고 보내는 게 맞긴 하는데... 이걸 학대의 원인으로 거론할 수 있을까요? 그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모든 부모는 -맞벌이든, 외벌이든 학대에 일조했다는- 약간의 죄를 저지르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입소시키는 걸까요?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여자니 잠시 쉬는 꼴도 못 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담긴 위의 댓글만이 아니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친척이나, 친구 같은 주변인들, 심지어 같이 아이를 키우는 이웃 엄마도 다음과 같은 말은 흔하죠.
"~~ 지역에서 또 어린이집 학대사건 일어났대. 휴, 정말 불안하네."
"내가 아는 사람이-혹은 내가 직접 봤는데- 어린이집에서 몰래 때리는 건 기본이라고 하더라."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속상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혹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같이 격분하며 천하의 나쁜 X이라 욕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다르다고 변호해야 하나.
아이 돌보기 힘들죠. 사랑하는 내 자식이래도 종일 붙어있는 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랑하는 여자친구랑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해요. 거기에 혼자 대소변 뒤처리도 못하니 내가 처리해줘야 하고, 조금 뛰면 아랫집에서 올라오니 자제시키는데 말도 안 듣고, 밥도 차려주고 먹여줘야 하고, 힘들어 뻗어 있으면 놀아달라고 보채고.- 운 좋으면 이런 여자 친구가 두 명!!- 이걸 종일, 그리고 매일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웃으면서 사랑으로 돌볼 수 있을까요?
그런 힘든 걸 왜 어린이집 선생에게 전가하냐 묻는 분도 있겠네요. 대다수의 엄마는 어린이집이 자신의 역할을 100% 대신한다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 16시간, 그중 맞춤형 보육 시간 6시간, 종일형 보육 시간 (대부분) 9시간. 나머지 시간에도 엄마의 역할은 끊이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님들의 노고야 크지만- 어린이집은 내 역할을 완전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쉴 틈을 줄 뿐이지요.
이야기가 잠시 딴 길로 샜지만, 사실 어린이집의 학대는 가정 내 학대보다 발생 비율이 더 낮습니다. 아동학대 발생 100건 중 약 77건은 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약 16건이 대리 양육자, 그중에서도 3건만이 어린이집 교직원에 의해 발생하니까요.(2018년 보건복지부 자료 기준)
(c) 2019년 제 3회 아동학대 예방포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를 집에서 보육하고, 기관에 보내는지에 따라 명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더 정확히 계산해봅시다.
(c) e-나라지표
(c) e-나라지표
2018년 전체 아동 인원은 약 817.6만 명, 그중,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은 141.5만 명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동은 676.1만 명이 되겠네요. 그럼 학대 발생 비율을 계산해보면
가정 보육 아동 676.1만 명 중, 학대 발생 1.9만 건 => 학대 발생 비율 약 0.28%
시설 보육 아동 141.5만 명 중, 학대 발생 0.08만 건 => 학대 발생 비율 약 0.06%
감이 오시나요? 약 4.7배에 달하는 수치. 이것은 가정 내 보육이 기관 보육보다 약 4.7배 더 학대 위험이 있다는 걸 알려 줍니다. 언론에선 가정 내 학대는 잘 드러나는 않고, 더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보육기관의 학대 보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부모가 걱정할 포인트는 보육교사보다 자기 자신이라는 섬뜩한 진실을 위 수치가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걸 읽는 어떤 분은 '내가 절대 아동 학대 가해자가 될 리 없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글쎄요, 감옥에 간 실제 가해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아이를 낳지는 않았겠죠.
기관에 아이를 맡기든, 내가 직접 24시간 케어하든 선택은 각자의 가치관에 달렸습니다. 누군가는 다양한 경험과 사회성을 위해, 누군가는 아이가 가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선택했을 테죠. 모든 부모는, 그리고 그들의 주변인은 서로의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 없어요.
여전히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는 죄인이 되고, 아이를 살뜰히 돌보고 있는 보육 교사는 의심에 시달립니다. 아이를 사랑하기위해,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각자 다른 방법을 택했을 뿐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