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일까?
모든 관계가 다른 모양일 뿐
“미씨, 옷이 그게 뭐야아~”
입사 한 달, 이제 좀 가까워진 관리부 K과장님의 지적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 전에는 패턴이 화려한 풀 스커트를 입었다고, 이주일 전에는 등에 구멍이 송송 뚫린 블라우스를 입었다고 꾸지람을 들어야 했습니다. 십오 년 전에 졸업한 엄마 잔소리를 여기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감회가 깊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남들보다 튀게 입는 편입니다. 지시대로 업무를 해야 하는 갑갑한 환경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소심이가 수월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고요.-하지만 이제 30대 중반, TPO를 따져 적정선은 지키니 도끼눈은 거둬주시길-
옷차림으로 칭찬을 받는다던가, 지적을 받는다던가 하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에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K과장님은 좀 과하네요. 다 큰 성인이 벗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혼나기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줌마가 이게 뭐야, 옷에 막 구멍이 숭숭 뚫렸어!”-어깨만 크로셰 장식이 있는 티였음-
“과장님도 일주일 전에 등에 구멍 뚫린 옷 입으셨잖아요.”
“그건 구멍이 작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갑자기 몇 년 전쯤 여가부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리뷰를 했던 책,‘여자의 적은 여자다’가 떠올랐습니다. 여성 간의 관계는 은연중에 엄마와 딸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주 골자였습니다. 어찌 된 우연인지 관리부 K과장님도, 그리고 마지막엔 이를 갈며 헤어진 전 회사 Y차장님도 장성한 딸을 둔 세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나를 딸처럼 여겨 저런 부주의한 말을 남발하는 걸까. 진짜 여자의 적은 여자인 걸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는 모든 상사와 맞지 않았습니다. 거절이 능숙지 않은 소심함이 문제였겠죠. 산더미같이 일을 떠맡고는 영문도 모르는 사수에게 볼멘소리를 해, 사이가 틀어지길 수차례. 지금은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 업무량을 상사에게 어필합니다. 실수하면서 배운 것이죠. Y차장님과의 관계도 어쩌면 제 소심함이 트리거였을지 모르겠습니다.
K과장님도 그렇습니다. 그녀의 주요 캐릭터가 까칠&털털이니... 남직원에게도 가끔 툭툭 던지는 말에 뼈가 있음이 기억났습니다.
내 적이 그녀들이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들의 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여자 상사라고 색안경을 끼고 본건 내가 아닐까. 어차피 모든 관계가 동일할 수 없는데.
일반화하지 말자, 나도 일반화의 피해자다 수차례 이야기하면서 정작 저는 그들을 ‘여상사’라는 일반화로 판단했구나 반성했습니다. 생각은 이렇게 내 편할 대로 굳어지니, 항상 자신을 되돌아봐야겠습니다.
저 멀리서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소장님, 그게 뭐예요~”
K과장님의 지적도 관심이겠거니, 그냥 웃으며 넘겨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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