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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r 18. 2020

'엄마'라는 집단에 좌절하다

 그동안 제 글을 한 편이라도 읽어보신 독자님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심지어 카톡 프로필의 이름도 '~~ 맘'일만큼 전형적인 애엄마죠. 동시에 소심함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자기주장을 못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사람을 만날 때면 주로 듣는 역할을 하다, 한마디 말을 꺼내고 나면 자기혐오로 일주일을 자학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죠.

 

 그런데 아이를 낳은 후부터 싸울 일이 많아졌습니다. 2015년, 첫째가 태어난 해에 한창 벌어진 맘충 논란. 어제까진 아니었다가 아이를 낳고 갑자기 오늘부터 속하게 된 '엄마'라는 집단에 적응기도 전에 그 집단에 대한 증오를 먼저 접했습니다. 식당 테이블에 똥 기저귀를 버리고 갔다더라, 카페 컵에 오줌을 받았다더라 등등. 설마 진짜 다들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몇몇 진상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이겠지, 어느 집단이든 다 진상은 있는 거잖아? '인간 본성'이란 걸 믿었어요. 다들 선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철 지난 '성선설'을 믿은 셈이었죠. 진짜 엄마들의 잘못이 아니라면 조롱하고 비판하던 사람들도 자숙할 거라고. 마치 그 옛날 '김치녀' 노래를 부르던 이들이 지금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추억의 낭낭 사건 (c) 나무 위키

그런데 우습게도,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논쟁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격렬해지고 있죠. 가끔 노 키즈존에 관한 불평이 수면 위에 떠오르면 반대 편이 우르르 몰려와 애엄마들의 진상짓을 일일이 열거합니다. 똥 기저귀, 오줌 컵, 그 와중에 수다 떨기 바쁜 엄마들, 그리고 또 기타 등등. 이쯤 되니 싸우기보다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어쩌면, 엄마들 중에 진짜 진상이 많을 수도 있다고, 모두가 나처럼 주변의 손가락질을 지긋지긋하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거리두기'로 전략을 바꾸려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모든 '엄마'들을 변호할 필요는 없다고, 그저 나 하나만 잘 행동하자고. -사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일 년에 한두 번인데 말이죠.- 이를테면, "나도 엄마지만 저 ~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같은 류의 댓글을 달 수도 있겠죠. '나는 저 진상 맘들과 달라. 나는 지각 있는 사람이니까.'라는 의미를 내포한.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관련기사를 피했어요. 어쨌든 모든 '엄마'들의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게 되자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들이 욕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점점 '맘충'이 광의를 띄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러다 오늘, 또 어떤 '맘'에 관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니 그만큼의 보육료를 가정에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의 청원을 올렸다는.

https://www.news1.kr/articles/?3877353

 참담합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이기심에 끔찍하리만치 절망합니다. 얼마나 돈이 부족해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의 월급마저 앗아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행하는 뻔뻔함에 분노마저 치밉니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 내가 그동안 이런 사람을 변호한다고 다른 악플러들과 바락바락 싸웠구나.


 회사에서 "너 코로나로 놀고 있으니 돈 내놔."라고 하면 수긍할 건지 청원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남의 돈 빼앗아 내 새끼 배불리 먹이는 게 그렇게 중요한지도요. 그 아이들이 커서 이 청원을 올린 사람이 내 부모인지 알 때 얼마나 부끄러워할지 생각 안해봤는지도. 어쩜 이런 걸 떳떳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국민청원에 올리는지도. 이런 사람과 '엄마'라는 카테고리에 같이 묶여있다는 사실조차 소름끼치게 싫습니다.


 왜 '맘충'이라는 꼬리표가 지긋지긋하게 떨어지지 않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집단이라면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차고 넘치니까요. 저는 제가 속한 '엄마'라는 집단의 배반자가 되겠지요. 이 글의 모든 문장이 가리키는 사실처럼요.

"나도 애를 키우지만, 정말 그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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