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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n 16. 2019

회사에도 폭력이 있었다.

지나 보니 그랬던 것 같아.

이전 글에 잠시 언급한 적 있지만, 새로 입사한 회사엔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어수선한 사내 분위기(작은 제조업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근로계약서 미작성  

    간간히 들리는 대표의 느슨한 사업 방식  

특히 3번이 걸렸던 건, 이전에 다닌 네 군데의 회사 중 두 번째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허허실실 사람 좋았던 사장님. 인간 대 인간으로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대표로선 급여지급미루던 최악의 케이스였습니다. 금방 해결장담하곤, 약속을 밥 먹듯이 지키지 않아 그곳에서 일하는 1년 남짓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지금이라면 박차고 나왔을 테지만 당시엔 나오면 영영 못 받을까 미련한 짓을 1년이나 지속했습니다- 그 사건은 결국,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민형사 소송까지 가는 진흙탕 싸움으로 마무리했습니다.-그럼에도 그분은 “내가 니 덕에 검찰까지 가봤다?”며 또 허허 웃었으니 알만하죠?- 그 경험은 네 번째 회사에서 어떤 막말과 모욕을 당해도 ‘그래도 월급은 안 밀리니 괜찮아’라며  6년 동안 버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번 구직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재고 따질 입장이 아니었지만, 월급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누군들 마음속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지 않을까요. 출근을 하는 약 2주 동안, 여차하면 나는 도망가리라, 이번에는 미련하게 버티지 않겠다! 다짐하며 계속 회사 사정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너 일 이렇게 할래? 이래서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아니 이렇게 프로젝트를 파악한 사람이 없으면 어떡해? 모르면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회의실에서 흘러나오는 질책의 말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날카로운 말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조히스트인 걸까요? 아니, 전 회사에 완벽하게 적응되었기 때문이라 변명하겠습니다. 그곳에서 버틴 6년 저도 모르게 머릿속 ‘막말 상사=유능한 상사’ 혹은 ‘인성 좋은 상사=무능한 상사’라는 인식 새겨놓았나 봅니다.

 

20대 초반 시절, 꼭 이상한 남자만 만나는 친구 L이 있었습니다. 바람을 피운다던가, L에게 번번이 용돈을 타간다던가 하는 남자들을 만나며 그녀는 끊임없이 속을 끓였습니다. 그러던 L이 몇년 전, “야, 공무원은 너무 재미없지 않냐? 그런 남자는 못 만나겠어”라고 얘기하던 게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는 일련의 연애로 ‘사랑=평온과는 거리가 먼, 가슴 아픈 것’이라는 공식 머릿속에 새긴 것입니다.


회사에 관해선, 제가 L과 별다를 것 없었습니다. 월급이 밀린다던가, 성희롱을 한다던가, 막말을 하는 상사는 어디에나 있다는, ‘또라이 불변의 법칙’으로 회사는 그런 것이라 합리화하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회사생활을 연애에 비유한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면접은 소개팅처럼 충분히 숙고해서 입사하는 과정이고, 퇴사는 이별처럼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지요. 전 비유하자면 일종의 데이트 폭력 피해자였나 봅니다. 항상 막장인 회사생활을 하다 이젠 정상적인 생활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회사 폭력 피해자였던 것입니다.


회사생활이 정말 연애와 같다면, 어디엔가 막장이지 않은 회사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물론 그전에 저도 좋은 사람 돼야겠지요. 연애 고자였던 L 현재의 남편을 만나 정착했듯, 제 막장 회사 연대기에도 해피엔딩이 있길 소망해봅니다. 이젠 가슴 아픈 출근이 아닌, 가슴에 비전 품고 기꺼이 일하고 싶습니다.




(c)Alex Kotliarskyi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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