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5년이 다 되도록 명절마다 싸웠다. 둘째가 낮잠시간이 되어 악다구니를 쓰는 상황에서도 촌수를 헤아리기 힘든 친척댁에 인사를 드려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을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명절 아니면 언제 인사드리냐며, 그래도 당일에 친정에 가는데도 툴툴거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이 이번엔 토요일에 먼저 친정에 들르는 건 어떠냔다. 웬일이래? 하늘이 무너져도 시댁이 먼저인 사람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제 시댁으로 넘어가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 "일요일 아침이지~"한다. 추석은 월요일이었다. 남편은 항상 가던 시댁 일정을 조절할 마음은 조금도 없이 남는 일정 한 개를 양보하며 생색을 냈던 것이다. 순간의 빡침에 지금 누구 놀리냐고 따졌고, 그 말에 남편은 "또 이럴 거면 가질 말던지"를 시전 했고,"그래 그러자"라고 응수했다. 평상시 운동을 미룰 때와 다르게 실행력이 갑자기 솟아난 남편은 어머님께 "이번 명절은 미가 가지 말재요."라는 카톡으로 크리티컬 킥을 날렸다.
그러자라고 호기롭게 돌아섰지만 주변 반응은
"그래도 그건 좀.."
두고두고 욕먹을 거란다. 성질은 더럽지만 귀가 얇은 난 목젖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억누르고 명절에는 너무 피곤하니 좀 일찍 넘어가면 안 되겠냐는 말로 대강 마무리했다.
신랑이 미우니 시댁도 미워졌다. 이모님이 안 계시면 당신 손으로 밥 한번 안 차려서 꼭 배달음식을 시켜먹게 하고, 그마저도 사람은 여섯인데 네 개만 시켜주셔서 애들 덜어주고 남은 볶음밥으로 때우게 하고, 당신이한다고 고무장갑 끼는 척하다 결국은 며느리에게 떠넘기는 모든 행위들이 보기 싫었다. 농담이겠지만 밥 먹으라고 챙겨주며 "다른 시댁에선 손주들만 챙기지 며느리 챙기는 집 없다"라고 생색을 내는 것도, 심지어 하나 남은 반찬을 냉큼 집어다 남편 밥그릇에 얹어주는 행동 하나하나가 서운함을 넘어 사무치기까지 했다.
차라리 나도 다른 집처럼 설-추석 번갈아가며 먼저 가자고 했어야 하는 걸까. 애써 불만을 억누르고 양보를 하니 뒤탈이 나버렸나 보다. 억지로 꾸역꾸역 집어넣은 밥도 체해버리고, 추석 마무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