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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r 08. 2019

밤 까기에 대한 단상

부모는 모두 채무자다.

“엄마, 빨리빨리~”

방금 저녁을 먹었는데, 서로 자기 입에 먼저 밤을 넣어달라며 아이들은 성화입니다. 언젠가 다큐에서 본 처마 밑 둥지의 새끼 제비가 떠오르네요.

“얘들아 방금 밥 먹었잖아;? 굶었니?”

“응! 히히”

한 시간 전 엄마가 공들여 차린 식사를 천연덕스레 잊어버린 척 하는게 얄밉기도 하지만 밤 까는 손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하나를 까면 접시에 올려놓기 무섭게 첫째가 홀랑 집어먹어 동생을 울리거나, 반대로 둘째가 언니보다 먼저 낚아채 첫째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빚쟁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결혼 전에는 게으름이 만렙이라 먹을때 손을 써야하는 음식은 무조건 안 먹곤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게나 새우같은 갑각류. 비린내 나는 해산물이 싫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비린내 나는 껍질을 손으로 까고, 발라내는 게 싫었습니다. 밤 까기도 해본 적 없었습니다. 삶은 밤은 으레 반으로 갈라 대충 앞니로 긁어먹곤 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과도와 한 됫박의 삶은 밤이 들려 있고, 앞에는 밤 채권자 두 명이 입을 벌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 추석에 시어머니께서 생밤을 봉지가 터지도록 챙겨 주실 때도 적게 주시거나 다음에 주셨으면 했습니다. 친정에서 받은 밤이 이미 냉동실에 꽉 차 있는데다, 그 많은 밤을 삶고 까는 일련의 수고가 아득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댁에서도 아이들은 밤을 끊임없이 독촉했고, 어머님은 한 봉지 가득 꾹꾹 눌러담은 알밤을 극구 사양하는 며느리 손에 꼭 쥐여주셨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사랑은 채무와 비슷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내 일부를 물려주는 대가로 평생 사랑을 갚아 나가야 하는 계약인 셈이죠. 그래서 대다수 부모는 육아를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사랑을 퍼줍니다. 야박한 비유일지 모르나 사실입니다. 이 사랑채무는 실제 채무처럼 법에 쓰여 있습니다-아동학대죄란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은 관대하거나 희생하여 베푸는 것이 아닌 당연한 의무입니다.


제가 현실에서 완벽한 사랑을 제공하는 부모라 자신만만한 소리를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선호보다 의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겐 모성애가 채무변제처럼 의무라는 사실이 더 쉽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말고 할 선택권이 없으니, 우리는 회피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어떻게든 해내야합니다.



 

분명 아이는 커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엄마보다 친구들의 사랑을 갈구하고 “엄마가 해준게 뭐 있어!”라는 막말을 하며 방문을 쾅 닫는 날이 도래하겠지요. 사춘기 때 대다수가 그런 것처럼. 그럼 지금이 그리워질 겁니다. 엄마의 썰렁한 농담에 자지러지며 누구 입에 먼저 밤알이 들어가나 치열하게 눈치보는 지금이 말이죠.


그러니 아이들에게 갚아야 할 사랑이 남아있는 채무자처럼, 오늘도 성실하게 밤을 까야겠습니다. 지금 상환하지 않으면, 훗날 훨씬 많은 이자를 붙여 준대도 이미 계약이 끝났다며 채권자가 이를 거부할지도 모를 노릇이니 말입니다.



내 손은 하루 종일 바빴지.

그래서 네가 함께 하자고 부탁한 작은 놀이들을

함께 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이 내겐 많지 않았어.


인생이 짧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갔기 때문에

한 어린 소년은 너무도 빨리 커버렸지,


그림책들은 치워져 있고

이젠 함께 할 놀이들도 없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 네가 함께 놀아 달라던

그 작은 놀이들을 할 수 있다면...


[성장한 아들에게,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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