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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l 27. 2019

최악의 하루

일하는 엄마에게 최악의 하루는 일상.

(2018년 12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현재는 재취업한 상태입니다.)



8시 10분. 지각 확정.

“엄마 가기 싫어어…”

지난 주말 열감기를 앓고 온 첫째 진이는 어린이집 정문에서 들어가기 싫다고 칭얼거립니다. 아마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어서겠지요. 적응 기간 없이 입학한다고 말했을 때 보았던 선생님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오릅니다. 지금 나도 그 표정일까요? 아이를 달래는 와중에도 지하철역까지 쉬지 않고 뛰어가면 9시 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스스로가 놀랍습니다. 빈 속 때문인지 초조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려옵니다.


9시 10분. 역시 정각을 넘어 도착. 그러나 정신을 차리려면 커피라도 들이부어야 합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탕비실에서 믹스커피 네 봉지를 뜯습니다. 포샷, 기록경신! 점점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카페인을 끊자고 다짐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10시 10분. 남편에게 오후 반차를 내달라고 부탁해봅니다. 새벽에 구토한 둘째의 소아과 진료 때문입니다. 나는 지난번 휴가를 냈으니 이번에는 남편 차례라고 설명해보았습니다.

“어제 오후엔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당일 반차는 나도 눈치 보인다고! 왜 이제 얘기하는거야?”

다음 날 생길 일까지 예상하고 미리 언질을 줘야 했다는 걸까요? 언제부터 워킹맘 필수템에 예지력이 추가되었지? 서로 탓만 하다 결국 싸움으로 끝이 납니다. 아이 생기기 전까진 성인군자랑 결혼한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네요.

    

11시 10분. 뚜벅뚜벅. 대표님은 예의 구부정한 자세와 언짢은 표정으로 등장했습니다. 와, 심상치 않은데. 자라처럼 파티션 아래로 머리를 숨겨봐도 안심할 수 없는 건 간밤에 해외 고객이 올린 장문의 항의 카톡 때문입니다. 갑질은 만국 공통인 건지, 재차 수령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보낸 항공 화물을 받을 수 없다며 한시가 시급하다고 닦달했더랬습니다.

“일 처리 하나 똑바로 못해? 걔네 일정 차질 없게 당장 처리해!”

무역부와 포워딩 업체는 항공사에 변경 요청 서류를 보냈으나 경유 항공사까지 끼어 있는 탓에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만 자동응답기처럼 반복합니다. 서류진행 기다리다 내 제삿날이 먼저 오겠어요! 구글을 뒤져 번호를 알아낸 현지 항공사와 경유지 항공사에 직접 전화를 돌려 처리 했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비루한 회화 실력 때문인지 대표님의 끊이지 않는 고성 때문인지 두근거리는 심장이 쉬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1시 10분. 직전의 소동 덕에 늦은 점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직원 4명이 모여앉아 제육볶음이 익길 기다리는 동안 일상 얘기가 오갑니다. K대리의 데이트 얘기, S과장의 취미생활 이야기. 주말 내내 앓다 겨우 나은 우리 집 첫째 얘기가 나오자 Y차장님은 해맑게 얘기합니다.

“애들 아픈 건 다 엄마 탓이야.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순간 정적. 와, 여기 막말 경연이 열렸나요? 계급장 떼고 저도 참가할 수 있을까요?


2시 10분. 기술부 S부장님은 회의실로 설계부를 호출합니다. 일장연설로 설명하지만, 결론은 부서 간 폭탄 돌리기.

“알겠지, 미씨?”

사수는 이 한마디만 남기고 휑하니 회의실에서 사라집니다. 차장님, 정리는 해주셔야죠. 차장님, 차장님 어디 가세요?!?


5시 10분. 남편은 병원 방문 후 둘째가 장염이라고 톡을 보내옵니다. 빛의 속도로 아이돌보미에 전화를 하지만, 신청 이틀 뒤부터 돌보미 선생님이 오시기에, 내일의 빈자리는 결국 내가 채워야 합니다. 두꺼워진 얼굴로 휴가원에 결재를 요청합니다.     


6시 10분. 1082번 버스를 타기 위해 영등포 소방서 정류장으로 뛰어갑니다. 바로 앞에서 좌석이 꽉 차버렸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습니다. 40분간 서서 가는 수밖에요. 배고파. 아침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딱 오 년 전에 다이어트 한다고 야단법석을 피웠던 기억에 쓴 웃음이 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 먹으면서 운동하라던 엄마 잔소리 좀 들을 걸.

 

7시 10분. 종종걸음으로 첫째를 데리러 갑니다. 시간 연장 반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는 여태까지 저녁도 못 먹고 엄마를 기다릴 터입니다.

“엄마~~~”

언제 칭얼거렸던 듯, 세상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뛰어옵니다. 따끈따끈하고 작은 생명을 품에 안으니 녹아내리는 기분입니다. 길었던 하루의 시작과 끝. 아이로 인해 힘들게 시작하고 아이로 인해 치유되며 끝나는 아이러니한 하루. 90%의 불행과 10%의 행복이 뒤섞인 삶.     


10분 늦게 시작한 하루 때문에 아이도 10분 늦게 저녁을 먹어야 했습니다. 꼼꼼히 챙기지 못한 엄마 때문에 아이들은 항상 아팠고,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설계부 대리 때문에 이사진이 가득한 단톡방에 고객은 주말 밤 10시에 항의를 했습니다. 잦은 휴가 덕에 눈치 보느라 부당한 대우에 찍소리 한번 못했던 것도 결국은 내 탓이었습니다. 항상 손가락질 받는 느낌이었으나 그 주체가 명확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느라 정작 자신에 대한 미안함은 뒤로 미뤘습니다. 건강은 나빠져갔고, 마음은 어두워져갔습니다. 육아와 일에 묶여 아슬아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우울은 멍에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무언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육아휴직 겸 사직을 선언했습니다. 그건 일종의 불편한 방학같이 느껴졌습니다. 쉬는 중에도 너무 쉽게 포기했던 걸까, 경력단절이 길어지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봐 신경 쓰이고, 면접을 보는 중간에도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신경이 쓰였습니다. 워킹맘, 경단녀, 그 이후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 엄마를 지칭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다둥이를 낳으라 국가 예산을 들여 캠페인을 하면서, 그 결과로 경력이 단절되는 건 개인의 문제라며 외면하는 나라가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내 딸들은 이런 경험하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내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봅니다.



(2018년 12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현재는 재취업한 상태입니다.)



Background photo (c) by Asw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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