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한 마디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저 아이, 얼마 전에 ‘대한민국 노동자 평균 연봉 3500만 원.’이라는 기사 못 봤나? 중소기업 현장 상황을 너무 모르는 거 아냐? 아니, 애초에 저런 극단적인 말을 오프라인에서 한단 말이야?
사실, 이전에 여초 커뮤니티에서 똑같은 주장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원글을 찾을 수 없어 기억을 더듬자면- '월 수령액이 300만 원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일하는 지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게시글에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면 다닐 수도 있는 것 있는 것 아니냐.’, ‘얼마 남긴다고 핏덩이 떼어놓고 일을 나가느냐.’ 등등의 댓글이 몇 백개 주르륵 달렸더랬습니다. -분명 각 가정의 선택은 상황과 개인 가치관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이게 공론화가 되는 순간, 개인적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한번 따져볼까요. 엄마가 아이를 전담해 돌보는 일과 가사노동의 가치는 월 300만 원이 되는지 말이지요. 입주 육아 도우미 월 250만 원, -한국인 육아도우미는 아이를 돌보는 일만 하니- 가사도우미 주 5회*4주(회당 5만 원) 즉, 월 100만 원. 계산기를 두드리면 얼추 350만 원이 나옵니다. -계산에는 휴게시간과 휴일이 제외되어 있으니 그런 것 따위 없는 엄마는 추가 수당이 붙는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렇게 많이 나올 리가 없다고요? 육아도우미가 가사까지 하면 된다고요? 그럼 저렴한 외국인 도우미로 계산해 봅시다.-그게 불법이 될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육아+가사 월 250만 원. 휴일 수당은 50% 가산되니까, 250만+(250만/5*2*1.5)=400만 원이네요. 와, 이혼 시 전업주부의 재산형성 기여도가 30~50%라는 건, 정말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었군요! 그런데 왜 전업맘은 항상 쪼들리며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고, 취집이라며, 집에서 논다는 둥의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지 갸우뚱합니다.
어떤 엄마는 계산이 맞지 않아도 출근을 합니다. 우리나라엔 무상보육이라는 제도가 있고, 앞에서 언급한 제반 비용을 본인이나 친정엄마를 희생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또 질문을 받습니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 일해?”, “애는 누가 봐주고?”, “애들 너무 고생시키는 거 아냐?” 이 악의도 없지만 배려도 없는 질문은 가뜩이나 처진 엄마의 어깨를 더 늘어뜨리게 합니다.-일 년 전 ‘워킹맘의 아이가 성취도가 높다’라는 CNN 기사에도 당당하게 달린 비난 댓글을 보며, 워킹맘의 죄의식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엄마는 궁색한 변명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새 학원비가 비싸서, 남편이 벌이가 시원찮아서, 집을 사야 하니까 등등…“너는 왜 일하니?”라는 질문은 아이가 있든 없든 회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존재를 부정하고 억지로 가정에 끼워 넣으려는 폭력적 의도가 다분합니다. 응당 육아는 엄마의 신성한 의무이고, 이를 팽개치고 나가는 데는 무언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을 강요합니다.
사정이 있든 없든, 월 급여 300만 원이 넘든 안 넘든, 전문직이든 아니든 육아의 의무는 엄마의 것만이 아닙니다. 전업맘이라도 육아의 기본 의무는 반반이고, 바쁜 남편을 위해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떠안은 것뿐입니다. 물론 가장도 힘들겠지요. 하지만 전업주부에게 육아의 의무를 100% 떠맡기는 건 정당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가장이 주부에게 순수한 용돈으로 입주 도우미 비용의 50%와 휴일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나도 우리 와이프가 잘 벌면 집에서 놀고 싶다."라는 말, "밖에서 일하기 힘드니 집에서 애나 키우는 거 아니냐."는 말. 모성애를 핑계로 400만 원짜리 노동을 무급으로 부려먹으며 동시에 무급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노는 여자'라 무시하는 말말말.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엄마도 커리어를 쌓고, 좋은 고과를 받고, 승진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나도 무언가 하고자 대학 4년을 고생해 공부했고, 나름의 꿈을 품고 사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 꿈은 결혼을 한다고, 아이를 품는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과 아이 사이에서 누구보다 갈등하는 것은 엄마 자신입니다. 주변에 엄마가 있다면 날카로운 호기심보다는 따뜻한 격려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힘이 되어줄 거예요.
그리고 오늘도 집에서,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에겐 멀리서 응원을 보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를 끼쳐야 할 때는 사과를 하고 넘깁시다. 모든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신세를 지다 보면, 신세를 갚게 되는 날도 오겠지요.죄의식은 내려놓고, 아이만큼 나를 사랑하는 자유로운 엄마가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