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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Oct 22. 2019

그런 건 집에 가서 하세요

생선뼈에 한 맺힌 한 여자의 절규

※주의 : 오늘은 아무 말 대잔치입니다.


이십 대 시절 은근히 성희롱을 일삼던 P차장님이 새로 온 관리 과장님을 가리키며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새로 온 K과장 이쁘지 않냐? 근데 네가 보기엔 네가 예쁜 것 같아, K과장이 예쁜 것 같아?"

 내가 알게 뭐람.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뇌도 거치지 않고 아무렇게나 답을 했죠.

"저는 이십 대고, 저분은 사십 대인데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않아요?"

...(알아요. 저도 과거의 저를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제가 어느새 나이가 들고, 삼십 대를 넘어, 드디어 사십 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서른'이라는 종이 울림과 동시에 '이십 대'라는 마법은 호박마차처럼 사라졌습니다. 껄떡거리던 왕자님도, 지켜보던 관객들의 관심도 연기처럼 사라졌네요. 갑자기 바뀐 주변 환경에 당황했지만 결혼-출산-육아라는 숨 가쁜 릴레이 덕에 그걸 신경 쓸 여유도 없었죠. 평균 연령 사오십 대인 이 회사에선 그런 일은(그러니까 관심이라든지, 썸이라든지)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 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개발부 남자 부장님(이하 이부장)과 관리부 여자 과장님(이하 김과장) 그리고 제가 밥을 먹으러 간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두 분이 마주 앉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밥을 시켰는데...이부장님이 김과장님의 생선을 아주 자연스럽게 발라주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뭐야? 둘 다 유부잖아?? 직장 동료니까 괜찮나?? 아니, 근데 내가 보기엔 좀 아닌데??'

내가 시대에 뒤처진 건가, 아님 빠져줘야 하나 머리 복잡하게 밥을 먹다 그마저도 다 먹지 못하고 쫓기듯 황급히 먼저 일어나 버렸습니다.


신랑에게 물어보니 배꼽을 잡고 깔깔 웃네요.

"너 투명인간이야? 안 보이나?ㅋㅋㅋ"

단톡방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예상과 비슷했죠.

"헐.. 좀 이상한데?"

그렇게 '생선뼈 집착녀'가 되어 곱씹기를 여러 번, 직장동료와 어색해지고 득 될 건 없으니 그냥 잊으려고 했어요, 진짜로. 그런데 왜 이 분들은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걸까요.


(김과장님의 핸드폰 사진을 보며)

나 : 어머, 이 분 연예인이에요? 너무 예쁜데?

김 : 친구야. 아, 얘는 풀메이크업했는데 나는 세수도 못해서...

이 : 사진 좀 봅시다.

김 : 아유, 안돼요. 저 너무 추레하게 나왔어요~

(옥신각신)

김 : 자 여기요. 아, 세수도 못했는데~

이 : 과장님이 훨~씬 예뻐요. 이 분은 얼굴이 과해.

김 과장님의 볼은 수줍게 빨개지고, 저는 또 밥이 얹힐 것만 같았습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왜 내가 썸 가운데 껴서 이 꼴을...

 

(c) 자이언트 펭TV


저는 이제 앞의 반찬을 과장님께 뺏겨도, 과장님 남편이 딴 여자 깻잎장을 잡아주면 죽여버릴 거라는 말을 들어도 제 정신일만큼 멘탈이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어요. 회식 날에 술 취한 척하고 물어볼 거예요. 꼭 대답을 들을 겁니다.

"왜 부장님은 과장님 생선뼈를 발라주고 그래요?

그런 건 집에 가서 하세요,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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