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 Oct 12. 2019

호박즙을 버리며

삐빅! 마음의 공간이 만원입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냉장고를 벌컥 열어젖혀 맨 아래 야채칸에 일 년을 묵혀둔 호박즙을 모조리 꺼냈습니다. 단호한 가위질로 호박즙 팩을 갈라, 친정아버지의 정성으로 키우고 내린 그것들을 하나둘 하수구에 흘려보냈습니다. 불효녀가 된 기분에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지만 구린 냄새는 역시 잘했다는 확신을 주네요. 애초에 부지런히 먹었으면 될 테지만, 밥 먹는 것도 깜빡하는 정신머리로 야채칸에 둔 건 불가능한 전략이었다고 나름의 변호를 해봅니다. 몇십 팩이나 되는 호박즙을 치우고 나니 이제야 냉장고가 한결 넓어 보이네요. 나는 몸에 좋다는 -혹은 선의의 선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얼마나 마음의 공간을 낭비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봅니다.


직장에서 과도하게 친절한 사람을 특별한 이유 없이 기피한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회사마다 꼭 한 명씩 있던 천사들. 사근사근한 말투로 모두에게 사랑받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찡그린 얼굴도 보기 어렵던 그녀.-이번 직장에는 ‘그’이지만-  그녀의 아우라에 아무리 지X같은 상사도 불같이 타오르던 화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죠.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그런 과도한 친절이 가끔 불편했어요. 지금 상사의 예를 들면. 부담스러운 관심을 보인다거나-차라리 일에서 친절하다면 감사할텐데-, 점심 시간에 굳이 찌개를 대신 퍼준다거나… 그래서 국자를 뺏어 들고 말했습니다. “이리 주세요. 제껀 제가 할게요.”. 


내가 초딩도 아닌데 그런 보살핌까지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본인이 친절해보이고픈 뻔한 놀음에 장단맞추고 싶지도 않고요. 친절이 대부분 선이긴 하지만 모두 선은 아닙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없는 막무가내식이라면 더더욱.


저는 그들을 따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럽거나 샘내는 건 아니예요. 첫 직장에서 호구로 보였다 크게 데인 이후로 ‘친절’이라는 캐릭터를 버린 지 오래. 오히려 냉담이라는 반대 극단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유 없이 싫었던 건, 그들의 어떤 부분이 저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겠지요. ‘인정 욕구’,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들에게 슬쩍 보이는 그 마음이 저에게도 있었기에, 불편했던 겁니다.


미국 작가이자 블로거 마크 맨슨이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들었던 일화가 생각납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마음 졸이는 어머니에게 얘기했다죠. “당장 가서 받읍시다. 소송이라도 해요! 신경 써야 하는 건, 엄마와 우리 가족의 돈일뿐이지, 그런 사람의 기분 따위 신경 쓸 바 아니에요.” 그들이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 준다 하더라도, 제가 불편하면 거절하겠습니다. 효녀가 되기 위해 썩은 호박즙을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Background Photo (c) by Scott Webb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환상을 파는 일을 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