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 Jun 02. 2019

환상을 파는 일을 한다는 것

전 직장에 바치는 헌사

엔드게임에 이어 기생충이 흥행 중입니다. 사실, 몇 년간 주춤하긴 했지만 아직 영화감상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취미이자, 오락이자, 데이트 코스입니다. 제 전 직장은-퇴사가 수리되었으니 이젠 ‘전, Ex’입니다- 영화관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만 이천 원을 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들어가지만 그들이 들어가는 곳은 결코 가볍게 지어진 곳이 아닙니다. 문화산업이라고 대기업 논리에서 자유로운 성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환상에 빠져드는 그곳에도 하청이 있고, 영업이 있고, 출혈경쟁을 유발하는 입찰이 있고, 그 모든 걸 뛰어넘는 내정자도 있습니다. 당신이 심야영화로 힐링하는 그곳에도 과중한 주야근무 박봉에 시달리는 직원이 있습니다.


영화관을 만드는 직원은 영화를 보지 않습니다. 밤새워 공사일정에 맞춰 테스트까지 마치면 이 유명한 영화의 반전이고 나발이고 빨리 집에 가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종종 싸게 얻을 수 있는 영화표도 누군가에게 줄 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관에서 3D 음향을 선보이고, 최고급 리클라이너가 설치되고, 기네스북에 오른 스크린이나 삼면에 투사하는 방식이 도입된들, 그걸 설치한 사람은 시착 외엔 온전히 두 시간 앉아 그 모든 혜택을 누릴 여유가 없습니다.

 

아마 업이라는 부담이 그런 것이겠지요. 그것이 어떤 분야든 말이죠.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데 기여했다는 보람이 가끔 찾아오지만, 곧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우리에겐 또 다른 입찰과 실적 압박과 긴박한 납기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의 소외’가 이런 것인가 가끔 생각했습니다. 착공 당시 그곳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지우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곱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곳. -어딘들 그렇지 않겠냐만은-

 

그렇게 멋지게 꾸며놓은 공간으로 관객은 들어와 두 시간을 보내다 떠나갑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하지만 가끔 기억해 주세요. 그곳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밤을 새워 장비와 자재를 설치해야 했다는 걸요. 이젠 그곳을 떠나지만 가볍게 영화를 보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Background image (c) by David Mark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의 행렬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