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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an 28. 2020

불안의 행렬에서

마스크는 써야겠다만, 그렇다고 안심될까?

십 대 시절 아울렛에서 겪은 일이 생각납니다. 아울렛이니 당연히 모든 옷이 일반 가격보다 저렴했는데, 거기에 더해 '그랜드 세일'까지 한다는 광고가 붙어 행사 매장이 출근길 지하철처럼 붐볐습니다. 한창 패션에 예민할 시기라 엄마를 조르고 졸라 얻어낸 용돈을 들고 갔건만 옷을 입어보기는 커녕 손에 들고 있기도 불가능했어요. 옷더미 속에서 괜찮아 보이는 바지의 다리를 잡아 올리면 옆의 아주머니가 그 바지의 허리를 낚아채는 식이었거든요. 하나 고르면 뺏기고, 다른 하나 고르면 또 뺏기고. 그러다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얘길 갑자기 꺼낸 이유는, 오늘 아침의 상황이 딱 아렛의 '그랜드 세일'같았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잠잠했으나 아침부터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알림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조심! 마스크를 꼭 착용하세요!'

처음에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등원하라고 했으나, 그다음에는 결석을 권장합니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 집니다. 침 튀기는 것만 막으면 되겠거니 싶어 일반 일회용 마스크를 구매하고 돌아서니,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는 황사 전용인 kf80도 비말 감염을 막기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일 배송이 되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장바구니에 저렴한 가격대의 마스크를 몇 개 담아놓고, 배송 가능 액수를 채우기 위해 쇼핑몰을 뒤지는데 또 심상치 않네요. 결제하려고 보면 아까 담은 마스크가 품절이고, 또 어찌어찌 다른 마스크를 찾아 결제하려 보면 그 사이 '품절 전 2개'라는 빨간색 경고문구가 뜹니다. 모두가 저처럼 kf94 아동용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자극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죽음을 현재 만들어내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 예정인 미지의 전염병은 더더욱 자극적일 테지요.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현재 우한 상황'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히 서있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고, 온몸에 방진복 비슷한 옷을 감싼 의료진이 그를 실어가는 영상이었습니다. '현재 우한 상황 2'는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데, 한 중국 의사가 자신만 빼고 모든 의료진이 도망갔다며 당국 담당자에게 울부짖듯이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좀비 영화를 즐겨보던 로서는 익숙한 장면이었죠.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 되면, 모든 일상이 새로워집니다. kf80과 kf94, 마트를 갈까 말까, 마스크를 쓰는가 안 쓰는가 등의 사소한 선택이 나의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바이러스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에 시달립니다. 병을 퍼트리는 감염자와, 진원지를 욕하고, 정부의 대응을 손가락질하는 건,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옆에 둔 순간, 나의 선택은 내 가치관을 쉽게 보여줍니다. 나보다 아이들을 위한 마스크를 먼저 구매할 때, 굳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할 때,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던 선택이 우리에게 거듭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선택이 맞냐고, 정말 중요한 것이냐고. 하이데거가 그랬죠. 불안은 우리의 존재를 일깨우는 기분으로, 이를 깨닫는 동시에 우리가 지배하던 것이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이 불안의 행렬에 떠밀릴 때면 이 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Photo (c) by Wei D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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