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약속 잡아놓고 외출하기 싫을 때 말이예요.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가는데, 옷은 어울리는 게 없고, 얼굴엔 뭐가 났는데 화장도 안 먹고, 그러다 늦고, 에이 가지 말까 싶고.
제 경우엔 힘든 시절에 특히 그런 날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대기업에 척척 붙었는데 나는 아직 취준생일 때,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우울에 허덕일 때,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질 때. 친구들은 메신저로 모이자며 와글와글 떠드는데 저는 조용히 있다, "미안, 나는 못 갈 것 같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저 아래로 잠수하는 게 일상이던 날들이었죠. 심지어 위로해준다고 어렵게 만난 친구를 앞에 두고 "어떤 사람은 타인을 위로하며 본인이 우월감을 느낀대."같은 헛소리도 지껄일 만큼 저는 참 정 떨어지는 친구였습니다. -머리 박고 반성하고 있어요;-
자존감이 낮아지면 타인의 반응에 민감해집니다. 아니, 확증편향이랄까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부정적으로만 해석되곤 하죠.
'나는 못생겼고, 잘난 것 하나 없으니 저 친구는 날 비웃을 거야.'
라는 생각은 어쩌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c) 정신의학신문, 정희주 정신의학 전문의
그래서 '너의 생각은 착각이니, 정신 차려라.'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힘들 때는 내 마음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고, 이럴 땐 타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힘든 시절엔 아들러의 '공동체 감각'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타인은 나를 공격하는 적이 아닌 협력자'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 같았죠. 아닌데? 나는 쟤들 때문에 힘든데? 쟤들이 나를 판단하고, 쟤들이 나 빼고 노는데? 이 생각은 언뜻 타인에게 중심을 둔 듯 보이지만 사실 나를 중심으로 두고, 모든 행동을 내가 편한 대로 해석했던 자기중심적인 생각-유아기적 사고라고도 하죠-이었습니다.
사실, 평온한 상태에서 보자면-혹은 내가 타인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생각해보면- 타인은 나를 특별히 적대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일에 몰두하느라 바쁠 뿐이죠. 설사 그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더라도 그건 스쳐가는 생각일 뿐이고, 더욱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문제니까요.
마음이 너무 아플 땐 나를 보호하되, 잠시 판단을 멈춰주세요. 그들이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 줄 구원자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나올 때까지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고 있는 동료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