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이들 발표회였어요. 진이와 민이는 지금까지 몇 달간 집에서 -나름- 필사적인 춤 연습을 했고, 동작을 외우기도 전에 발표회는 이미 끝나버렸습니다. 아마 둘은 또 새로운 춤을 배우기 전까지 오래오래 그 율동을 반복할 겁니다. 작년 겨울에 시작한 춤이 사계절을 지나 이번 해 말에 잊힌 것처럼요.
첫 번째만큼은 아니지만 내 아이의 두 번째 발표회는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갓 태어날 당시 못생긴 고구마 같던 진이가 어느새 자라 길쭉한 팔다리로 율동을 하고 있다니! 등 센서 덕에 눕히기만 하면 비명을 지르던 민이가 제 발로 저 큰 무대 위에 올라가다니! 무대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또 떨릴까, 알지만 대신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흔들리는 물 잔처럼 수시로 울컥울컥 합니다.
남편은 멀리서 전체 샷을 찍고, 저는 무대 바로 앞에서 동영상을 찍기로 했어요. 그런데 아뿔싸, 할부가 끝난 폰카가 초점을 잡지 못하네요. 저는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을 치기 시작한 진이는 그렇게 연습하더니 한 박자씩 늦습니다. '바나나 차차'를 연습한 민이는 움찔움찔 열을 흐뜨러트리면서도 열심히 손동작을 따라 합니다. 핸드폰을 거치지 않고 그 모든 순간을 '쌩'으로 목도한 저는 또 한 번 차오르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울컥하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퇴근 후에도 고생하셨을 선생님을 보며, 갑자기 등장한 친정 부모님을 보며.-제 졸업식에도 안 오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언급해야겠네요- 눈에 보이는 현재에 감동하고, 그 이면에 축척된 노력에 감동하고, 침울했던 과거와 비교되는 현재의 변화에 거듭 감동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육아가 힘들다 불평하던 일상 속에서도 아이는 꾸준히 자라 이번 발표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대학 시절 "너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다."라는 말로 상처를 주던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칠십 키로를 달려와, 식당에선 오물거리는 작은 입에 밥을 떠먹였습니다.
웃으며 친정아버지를, 시어머니를 배웅하는 찰나를 글로 붙잡습니다. 이런 게 가족이구나, 하는 느낌에 또 마음 한 구석이 울컥합니다. 초점 잃은 카메라처럼 뿌연 원망들을 치우자, 그제야 마음에 무언가 와 닿기 시작합니다. 팍팍한 일상에도 감사할 것이 있고, 목석같던 나에게도 감정이 있구나.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못했던 것을 누리게 해 준 쓰기가 이제야 고맙습니다.
Background photo (c) by 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