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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an 23. 2020

밀레니얼 며느리가 문제인가

이십 대 중반 무렵의 설이 생각난다. 당시 맏며느리였던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약 육 년쯤 되 해였다. 숙모 두 분이 계셨지만 일 때문에 바빠 항상 늦게 오셨기에, 아빠와 할머니 댁에 일찍 도착한 나는 종일 명절 준비를 도와야 했다. 그것만 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당시 대학 4학년, 취업반이었던 터라 친척들의 질문공세도 견뎌야 했다.

"그래, 졸업은 언제 하니?"

"남자 친구는 있고?"

"왜 이렇게 살이 쪘니?"

지금 같으면 슬쩍 말을 돌리거나 나중에 험담으로 털어냈겠지만 당시의 나는 취업 스트레스에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래서인지 명절만 되면 기분이 푹꺼진 소파처럼 가라앉아 나아지질 않았다. 이번 설엔 할머니 댁에 가지 않겠다고, 왜 나만 꼭 가야 하냐고, 아빠와 싸우다 결국엔 그게 첫 번째 가출이자 독립의 발단이 되었다. 결혼하기도 전에 명절 증후군을 좀 일찍 겪은 셈이다.


나는 그때까지 지구가 망한 대도 명절이면 시골에 가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힘들어도 다 그런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 어느 날 같은 취업 스트레스를 겪고 있던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시골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 왜 나는 그런 자유가 없냐고 아빠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명절에 시골에 안 내려가면 안 돼?"

"왜 나는 명절에 다른 사촌들처럼 한 번 빠질 수도 없어?"

"왜 내가 꼭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해?"

아빠는 그저 장녀로서 내 의무임을 강조할 뿐, 납득할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집을 나간 후 빠진 첫 명절, '장녀의 의무'는 허상임을 곧 알게 되었다. 나 없이도 다들 즐거운 명절을 보냈으니까.


최근 명절 모습이 달라졌다는 기사를 접했다.

'서늘한 여름밤' 작가님은 '차례상 대신 브런치'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즐겨 듣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며느리가 명절에 오지 않아 야속하다"며 사연을 보낸 시아버지 덕에 게시판이 시끌시끌하기도 했다.

 

남녀를 떠나서, 이제는 '원래 그래.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여.'가 통하지 않는다. 통할 사람들이었다면 촛불집회로 대통령을 몰아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지. 졸업 후 내가 학과를 선택해 스스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원하는 진로를 선택해 일을 하고, 하는 배우자와 결혼해 같이 착실히 돈을 모아 왔다. 그런데 갑자기 원하지 않았던 것에 책임을 지란다. 그것도 누구는 해야 하고, 누구는 빠져야 하고. 무언가 부조리하다는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일부는(나도 포함이지만) 평화를 위해 참고, 일부는 일단 부딪혀본다.


십몇 년 전의 서러움이 다시금 생각난다. 친구는 빠져도 되는데 왜 난 안되지? 내 자유는 어디 간거야? 이게 첫 명절을 맞는 며느리들이 마주하는 당혹감일 게다.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무언가 선택할 자유, 혹은 대화로 합의할 여지. 그것만이라도 주어진다면 명절이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사는 며느리를 가리키고 있지만, 사실 문제의 발단은 자유와 소통의 부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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