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인은 유고시에서 아름다운 것을 음미할 때 놓쳐서는 안되는 세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이니라. 한없이, 한없이 슬픈 것이니라. 슬픈 것이니라."
인간에게는 각자의 향이 있습니다. 이 향은 인생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아픔과 슬픔을 조금씩 치유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그렇기에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삶 속에 내재한 아픔을 '우아하게 수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무엇보다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쾌감이나 욕구 충족을 통해 얻어지는 주관적인 만족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만족감만으로는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없습니다.
행복은 처해진 상황 속에서 '나'와 '타인'이 동시에 만족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미성숙하거나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로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죠.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주관적으로 만족하는 것 이상의 심리적 과정이 요구된다.
삶에서는 만족감보다 기쁨이 심리적으로 더 성숙하고 깊은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고통을 배척해내는 쾌감이나 만족감과 달리, 기쁨은 고통마저도 기꺼이 수용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미성숙하거나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고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다루는 법을 모르기에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모두 외면해 버립니다. 이렇게 치유되지 못한 삶의 고통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되죠. 아무리 밝은 곳을 찾아가더라고 항상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본질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행복은 쾌락의 '강도'나 만족감의 '빈도'가 아닌, 기쁨을 경험하는 '깊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깊게 느끼는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삶에서 고통을 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희망의 기쁨도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희망의 기쁨은 고통을 외면하는 자기 기만이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자아도취와는 다릅니다. 삶에서 희망이 주는 기쁨은 슬픔조차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희망(hope)과 소원(wish)은 다릅니다. 소원은 사람들이 삶에서 어떤 일이 성사되길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불행한 이유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인생에서 소원은 이루어지기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희망은 온갖 어려움과 고통과 좌절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계속해서 살아갈 가치와 이유가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에겐 더 이상의 미래가 있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향기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분석 작업이 중요합니다. 탄소의 산소화는 보이지 않지만 우린 불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침 반사는 보이지 않는 신경 과정이지만 기침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죠. 마찬가지로 사람의 향기 역시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지만 우린 분명히 좋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1964년 미국의 대법원에서 포터 스튜어트는 실제로 어느 두 대상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런 차이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차이를 보면 안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의 향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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