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소이치로 이야기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을 선정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두카티(이탈리아 바이크 브랜드)를 타고 좋아하는 저는 바로 두카티를 떠올렸지만 그때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로 선정된 것은 두카티가 아닌 혼다의 슈퍼 커브였습니다.
혼다 커브는 개발 컨셉, 디자인, 기술 등에서 실용성과 경제성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1억 대 판매를 돌파했습니다. 1958년 처음 출시된 이후 혼다의 슈퍼 커브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혼다 제국을 건설한 일등 공신이 되었죠.
슈퍼 커브의 개발자는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입니다. 혼다 소이치로는 2000년 일본 경제 신문사가 진행한 조사에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더불어 경영의 쌍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기술의 화신이었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공헌하는 사람이 바로 기술자로서 인격자이자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영웅들의 삶의 그러하듯이, 혼다 소이치로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가 시도했던 일들 중에서 성공한 것은 고작 1%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혼다 소이치로가 경영의 영웅으로 탄생하게 된 심리학적인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서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린 99%'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혼다 소이치로는 1906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가난한 대장장이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여동생을 돌보고 방과 후엔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며 아버지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의 지저분한 옷차림 때문에 내쫓긴 적도 많았고 가난 때문에 차별을 받았던 경험들이 그의 가슴속에 멍처럼 남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경험을 한 사람이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분노감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법 중 하나는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적응기제로는 '행동화(acting out)'라 부릅니다. 행동화는 내면의 아픔과 고통을 문제행동 또는 비행행동으로 표현하는 미성숙한 기제입니다.
어린 시절 그는 마을에서 유명한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또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죠. 싫어하는 과목 시간엔 교실을 몰래 빠져나와 학교 뒷산에 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혼다 소이치로가 다니던 학교 뒷산에 수박밭이 있었는데 그는 수박을 골라 구멍을 뚫어 속을 다 파먹은 다음, 안 들키려고 구멍을 땅을 향하도록 놓고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혼다 소이치로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계에 흥미와 소질이 있었고 그 재능을 활용해 번 돈으로 기생을 불러 흥청망청 쓰면서 지냈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다리의 난간들을 부수고 자동차와 함께 다리 아래도 추락하는 사고도 냈고 세금 납부 문제로 다투다가 화가 난 나머지 호스로 물을 끌어다가 세무서에 뿌리는 소동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동석했던 기생 중 하나가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이야기를 하자 홧김에 그 기생을 2층 창밖으로 던져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운 좋게 그 기생은 창밖의 전선 줄에 걸려 추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혼다 소이치로의 미성숙한 행동화에 변화가 생겨났는데 바로 그가 스피드광이 된 것입니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직접 차체를 제작하고 항공기 엔진을 개조해 얹어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경주용 자동차로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적응기제의 측면에서 볼 때 스피드를 광적으로 즐기는 것은 '해리(dissociation)'에 해당됩니다. 해리는 의식의 상태를 변경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데 정신을 쏟아붓다 보면 그 순간엔 삶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피드를 통해 빠르게 의식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점점 더 무리한 시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30대의 혼다 소이치로는 자동차를 개조해 최고 속도를 경신하는 데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936년에 자동차 스피드 전국 대회에 참가해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시속 120킬로미터를 돌파했지만 우승을 목전에 두고 다른 차와 충돌해서 큰 사고가 나 의식불명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갔고 운 좋게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에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혼다 소이치로가 유년 시절과 젊은 시절 겪었던 크고 작은 사고 경험들은 훗날 '혼다이즘(Hondaism)'이란 경영철학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모터사이클은 반항의 상징이었기에 라이더들은 아웃사이더, 반항아, 범법자 취급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혼다 커브는 이런 모터사이클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혼다이즘의 핵심은 바로 '꿈의 기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의 기술은 단순히 '최신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꿈'을 실현해 주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그런 혼다이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 중 하나가 바로 혼다 커브입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있을 때 도쿄의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새 출발을 위해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지진으로 교통시설이 모두 파괴되었기에 생존자들은 발만 동동 굴려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혼다 소이치로는 귀향 인파들을 모터사이클에 태워 지진 피해 지역 바깥까지 태워주는 일을 했고 그 일을 계기로 모터사이클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터사이클은 자동차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람들을 데려다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모터사이클은 귀향객들의 간절한 꿈을 이루어주는 도구였던 것이었죠.
혼다 소이치로는 '모터사이클 같지 않은 모터사이클'인 혼다 커브를 개발함으로써 '무법자 같은 인상을 주던 모터사이클 위의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란 인식을 안겨 주었습니다.
어릴 적 그 역시 고향에서 '무법자'라는 평편을 들었던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혼다 커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과 인정을 얻고자 했던 그의 내면의 욕구가 생산적으로 승화되어 표현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혼다이즘은 승화의 심리학적인 연금술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항상 사람들을 보면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편입니다. 지금 성공한 사람들도 다 어렸을 때 우여곡절, 힘듦과 아픔이 오히려 컸었고 그 어려움을 성숙한 기제로 잘 풀어내서 성공한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젊었을 때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나도 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멋있게 승화를 시켜낸 것 같습니다.
항상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지 마시고 혼다 소이치로 같은 존재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아시고 지금 상황을 더 멋있게 승화시켜 내실 수 있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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