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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Jul 07. 2021

추미애, 유리천장을 부순 여자

여자가 되는 과정

지난주 추미애 ‘페미'발언 기사를 보고,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내년이 대선인데, 제일 눈에 띄는 여성이라 그런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보고 싶었다. 혹시나 기사에 누락된 맥락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사 타파 TV 유튜브 방송을 직접 찾아봤다. 질문은 이랬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 됐기 때문에, 이제 여자 대통령이 아니게 된 거예요. 그리고 추 장관님이 그동안 걸어오신 길은 대한민국 여성 정치사에 유리천장을 계속 제거한 역사잖아요. 20-30대 MZ 세대라고 부르는, 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생까지, 우리 아들 딸도 청년 세대이시잖아요? 그 청년 세대에 공감할 소통과 정책 한 가지와, 이상하게 이준석 대표가, 저는 잔머리라고 생각하는데, 말장난이고, 그 반페미니즘 정서를 형성해서 상당히 표를 20-30대 남성들한테 모은 측면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것도 잘못이고, 정의당류의 극단적 페미니즘도 저는 잘못인 것 같아서, 추미애 장관이 생각하시는 정상적인 여성주의와 남녀평등 시대를 어떻게 가꿔갈 것인지. 제가 드리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리 길지 않았다. 5-6분 내외이니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길이였다. 인터뷰 말미에 있으니, 내 요약이 시원찮고 정말일까 의문이 든다면, 직접 찾아보시길 권한다. 내가 이해한 추미애 전 장관의 대답은 이랬다. 남자들이 여자를 차별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을 정도로 (자기처럼) 여자들이 열심히 하면, 남자들이 알아서 양보하는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겠냐는 것. 기가 찼다. 소통 없는 기대는 판타지라고 고객들에게 항상 말하는데, 내가 딱 그 꼴이다.  실망스러웠다. 이런 여성 정치인이 많이 양성되는 게 내가 바라는 ‘평등'인가?  



유리천장을 부순 여자


 남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남성적 문화가 주도하는 조직에서 여자가 조직의 장을 차지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여자라서 다른 대우를 바란다면, 조직의 한낱 장식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리라는 대답도 아마 한국 대부분 조직에서 현실 이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유리 천장에 부딪칠 때마다 머리에 피가 나도록 노력했을 것이란 걸, 나는 안다. 그리고 깊이 존경한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이 자기처럼 열심히 일하면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대답은, 다른 직종의 전문가라면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니라, 문제의식이 없다. 


 이 지점에서 나는 좀 결이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남성적 문화에서 유리 천장을 부순 여자는 어떤 여자가 되는가? 그녀는 유리천장을 부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했는가? 하찮은 나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여자라서 지나치게 주의를 끌어도 안되고, 남성적이거나 무성의 존재가 되어서도 안되었다. 남성적 작동방식을 깊숙이 내면화하되, 규범화된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했다. 아마 여자라는 사실이 큰 피해가 되지도, 큰 장점이 되지도 않도록 조심하며 살았으리라. 그렇다면 여자를 여자로 만드는 규범 자체를 의심하는 이 시대 여자들에게 추미애 전 장관이 할 말이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닐까? 


 ‘여성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보부아르라는 프랑스 여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사회의 규범을 일방적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전통적으로 여자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이 틀을 해체하며 자신을 발견하는 제2의 과정이 있다. 돌이나 모래는 흘려보내고, 묵직하게 가라앉는 사금을 채취하는 것처럼 자신이 아닌 것은 해체하고, 스스로에게 진실된 것만 남기는 과정이다. 유리천장을 넘었던, 못 넘었던, 보기에 좋은 일을 하던, 낮게 평가받는 일을 하던, 이런 해체의 과정을 거친 여자는 그 전과는 좀 다른 사람이 된다. 



여성성과 남성성


 암묵적으로 행동의 기준이 되어온 규범을 신뢰할 수 없을 때, 그동안 따라온 의무가 정말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 때, 사람들은 진실된 것을 느끼는 자신의 직관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소개하려는 여성성은 이런 느낌과 직관의 영역이다. 나는 여성 혐오를 여성성에 대한 혐오로 해석한다. 여자가 여자라서 겪는 많은 고난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사회적 차원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현상의 근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주 도식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소개하면, 남성성은 직선적 작동 방식, 사고와 논리, 형태와 구조, 성취지향, 통제, “어떻게”에 해당한다. 여성성은 곡선적 과정, 주기적 순환, 느낌, 감정, 직관, 형태를 채우는 에너지, “왜"를 가리킨다. ‘여성성’이라는 말을 꺼내면, 또 다른 ‘여성상’을 규정하는 것이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정의된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 남자와 여자가 사회적으로 어떠해야 한다는 규범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성질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현시대의 많은 증상들이 여성성에 대한 착취로, 어떤 형을 완성하기 위한 에너지 착취로 설명된다. 느끼기에 좋은 삶보다는 남에게 보이기에 좋은 삶을 지향하는 태도, 사람을 존재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따라 평가하는 습관, 성취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 소진해 버리는 번아웃, 자신의 성(性)과 몸을 비옥하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태도, 땅의 힘을 돋아주고, 생태계를 돌보는 데는 관심 없이 단기간에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데만 집중하는 농업 방식 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다. 분야와 전통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을 정의하는 방법이 다들 다른데, 내가 배운 전통의 현대문명 진단은 이렇다. 삶의 방식과 문화 자체가 전반적으로 남성성으로 치우쳐있다. 


 도식적으로, 짧게나마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소개를 여기서 하는 이유는 남성적 방식과 다른 작동 방식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 그들이 주류는 아니지만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다. 자신의 생리주기나, 달의 주기에 따라 자신의 캘린더를 계획하는 여자들이 있다. 배란기에 잘 되는 일과, 생리 기간에 잘 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주기에 따라 몸의 상태와 감정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시간은 직선적 개발과 발전을 위한 축이 아니라, 사계절처럼, 해와 달의 주기처럼 반복되는 자연적 순환이다. 이런 여성성을 비즈니스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전통적인 문제풀이 방식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직관과 느낌, 에너지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모델이 탄생한다. 여성성에 기반한 새로운 모델은 성(性) 생활의 영역에도 있다. 클라이맥스에만 집중하는 남성적 성경험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느끼는 과정, 몸의 민감성에 더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세상에 이런 게 가능한지 몰라서, 알기 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을 벌이는 여자들이 있다. ‘남들이 바라는 좋은 여자가 되지 말고, 좋은 여자의 기준을 새로 쓰는 여자가 돼라'. 포부가 삼국지 조조만큼 큰 내 멘토가 남긴 말이다. 한번 듣고 마음에 남아 죽을 때까지 숙제를 하게 만드는 위험한 조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녀와 같은 꿈을 꾼다. 사람이 달라지면, 세상은 필연적으로 변한다. ‘좋은 여자’라는 견고한 틀을 조각조각 해체하며, 이전에는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던 자기 안의 새로운 여자를 발견하는  과정,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분명 가치 있는 경험이다. 이 과정을 경험하는 여자가 많아질수록, 여자가 여자라서 행복한 세상, 우리의 딸들이 여자로 태어나서 참 좋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빨리 오리라 믿는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같이 게재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booooooom.com/2019/07/25/artist-spotlight-broken-fingaz-crew-3/  

'Artist Spotlight : Broken Fingaz C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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