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해열제 꼭 먹어야 하나?
아프지 않고 100년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병치레는 한 적이 없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소소하게 아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감기와 요통. 소소하다고 소홀할 수 없기에 자주 경험하는 병에 대해 잘 알아두고,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사로 몸을 관리하는 습관이야 말로 100년 동안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현대 의학이 발달하더라도 병 자체를 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얼마 전 코감기(급성 비염, acute rhinitis)에 걸려 맹맹한 열흘을 보냈다. 다행히 열은 없었지만 열흘 중 하루는 몸살로 힘들었던 것만 빼면 크게 아프지 않았다. 이번 감기는 2012년, 생의 세 번째 감기 이후로 여섯 번째 걸린 감기. 첫 번째 감기는 자연 치유, 두 번째는 해열제와 진해거담제 복용, 세 번째는 항생제와 해열제 복용.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 감기는 자연 치유. 현재까지 감기와의 대전 전적이다.
세 번째 감기 때는 이틀 만에 약 복용을 중단했다. 약을 복용했음에도 감기 증상이 계속 진행되어 바이러스성이 확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열이 심해 일을 하기가 힘들 것 같아 의사 처방을 받고 이틀 후에도 별 차도 없어서였다. 결국 며칠 지나서 증상은 호전되고 감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주일 만에 내 몸에서 사라졌다.
감기 때문에 해열제를 복용하는 이유는 열 때문이지만, 성인의 경우는 직장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이유가 더 크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사회생활이니까. 하지만 감기로 인한 열을 내리기 위해 해열제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걸까?
인체가 바이러스(Virus)에 노출되면 체내 세포에 잠입한 바이러스는 급속히 증식하고 주위 세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가 바로 '염증(炎症, inflammation)'이다. 한자로 염은 덥다, 불타다, 더위를 의미한다. 영어인 inflammation은 구어체로 인화, 발화의 뜻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의학적 이상 징후로서의 열은 'fever'.
감기의 일반적 진행 증상
1. 열이 남 - 몸이 열을 내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중
2. 가래와 콧물이 나옴 - 목과 콧속의 분비물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중
3. 기침이 남 - 이물질을 뱉어내는 중
감기에 걸렸을 땐 위와 같이 진행되는 동시에 인체는 회복을 위해 치유 시스템을 가동하는데, 이때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과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생체 내에서 합성된 생리활성물질로 8종이 있으며 종류에 따라 생리적 작용이 다르다)'이라는 물질을 분비시킨다. 염증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많이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은 결국 뇌의 체온조절중추에 도달해 체온을 상승시킨다.
감기로 인해 손상된 조직과 혈류를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통증과 발열이 일어나고, 이러한 치유 반응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파괴된 세포의 복구를 마쳤을 때 비로소 감기가 낫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자연히 열이 나도록 하는 치유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다. 인체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열을 내어 스스로 살균작용을 하는 것.
열은 감기의 회복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무조건 열을 내린다고 감기가 낫는 건 아니다. 병이라는 것이 원래 열을 동반하므로 열이 내려야 병이 낫지만, 반대로 충분히 열이 나야 그 병이 제대로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감기에 걸려 열이 나도 해열제를 이용해 열을 내리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 외국의 연구 결과에서도 약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감기에서 빨리 회복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겪는데 감기도 마찬가지. 감기가 발생하면 심해졌다가 쇠퇴해서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평소 건강한 사람은 대체로 1주일이면 감기가 낫는다. 이는 감기가 1주일 동안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의 과정에서 열이 조금씩 나다가 노의 과정에서 심하게 나고 그 후에 차츰 열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약으로 무조건 열을 내리면 그 과정이 교란된다. 감기가 막 심해지려고 하는데 억지로 열을 내리면 감기가 진행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낫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감기도 진행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열을 내리면 병이 잠복해서 오래간다. 한 달 이상 가는 오래된 감기 환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열이 날 때는 해열제를 성급하게 쓰기보다 감기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참고 견뎌야 오히려 쉽게 낫는 경우가 많다(감기에 걸리면 한 달간 지속된다고 하는 지인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약을 달고 산다. 열은 내렸지만...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해열제를 남용하게 되면 몸이 붓거나, 난청, 간 손상과 같은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
세 번째 감기에서 내 체온은 37.9도였다. 초기 열이 약간 있는 상황이었고, 셋 째날 열이 조금 더 올라갔지만 활동하는데 크게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해서 해열제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해열제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체온이 39도를 넘어가는 경우다.
나 역시 39도를 넘는 열은 다섯 번 정도 경험한 적이 있는데 모두 편도선 염에 걸렸을 때다. 이렇게 열이 39도를 넘는 경우는 위험할 수 있고, 체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꼼짝달싹 할 수 없으므로 먹는 것이 좋다.
감기 외에도 인체가 열을 내는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치료법은 다르다. 기온이 너무 높아지면 체온이 급격히 상승해 열사병(heatstroke)이 발병하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다. 우리 몸의 체온조절 능력이 기온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 때는 서둘러 체온을 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열사병이 발병했을 때는 옷을 벗기고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주면서 부채질을 해주되 신속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사랑과 유대감이 마치 예방약처럼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인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라면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높은 스트레스는 결국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 반복된 스트레스는 수면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잠이 부족해도 감기에 걸리기 쉽다.
부족한 수면은 결국 피로를 수반하게 되고 몸의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하루 6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는 사람들은 7시간 이상의 잠을 자는 사람들보다 감기에 4.2배나 자주 걸린다고 한다. 5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는 경우 감기에 걸리는 상대적 빈도는 더 높다. 일찍 잘 수 있는 경우에도 스마트폰과 온라인에 빠져 잠을 늦게 청하는 사람은 새겨볼 대목이다.
참고: 푸샵 글 (http://pusyap.com/197)
참고: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참고: <내 몸을 살리는 건강상식 100>, 오카다 마사히코 지금, 황미숙 옮김, 북웨이(2008)
참고: <심플한 건강법 333>,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유영미 옮김, 로고폴리스(2017)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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