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스티븐 호킹의《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중에서
특별하지 않았던 그 날의 시작. 예정된 계획이나 약속, 과거 따위는 없던 그 날에 위대한 자연 우주는 ‘우연히’ 그리고 ‘스스로’ 시작했다. 특별함을 좋아하는 대다수가 어쩌면 궁금해하지 않을 ‘우주와 생명의 시작’. 그러나 누구라도 한 번쯤은 양자 수트를 입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인터스텔라호를 타고 떠나보고 싶은 우주와 세포 속으로의 여행. 우리 현실은 가보고 싶은 광대무변한 우주라는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의 배경에는 세상과 만물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것을 통제하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자연법칙은 우리가 몸담은 신비하고 놀라운 우주에서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니 이 책은 운동에 관한 안내서가 아니었던가”하고 의문이 드는 독자를 위해서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운동을 위한 안내서임에도 우주와 생명의 시작부터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 움직임, 즉 ‘운동Movement’이라는 자연현상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한처음 세상이 특정 운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견지해 왔다. 거기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비롯했다." -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50년경
-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날마다 천체 물리》중에서
우주의 탄생이 운동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종교와 과학, 예술과 철학이 밝히고 사유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해왔던 최초의 자연현상이다.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처음의 자연현상이기에 프랑스 사상가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1814)는 "자연의 본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움직임"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우주 탄생은 움직임에서 시작됐고, 우리를 포함한 우주 만물과 그 구성물질은 움직인다. 움직임 때문에 당신과 내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자연법칙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이미 보았다.
어느 날 심장을 움켜쥐며 쓰러져 삶의 마지막 날이 되지 않으려면, 먼 미래에 이 땅의 지배자로 살았던 공룡처럼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운동이라는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이것을 통해 미래를 좌우하는 법을 터득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와 생명의 시작이라는 과거를 먼저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내다볼 순 없다. 우리가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더 잘 이해하고 알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밝혀진, 앞으로도 밝혀낼 자연의 법칙들을 잘 이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새로 발견된 사실들로 인해, 진리라고 믿어온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우주가 그러하듯 (아무런 안내서 없이) ‘운동’도 함께 지니고 태어난다. 때문에 몸이 지닌 위대한 자연현상인 운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당신 몸속에 잠들어 있던 운동을 깨워 실천할 때 몸과 마음이 이전보다 나아지고 삶은 좋은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은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는 움직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 말의 의미는 우주가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명이 잉태한 순간부터 호흡 운동이 다해움직임이 멈춰,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움직인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움직임을 통해) 전 지구에 걸쳐 문명을 이룩한 인간 모든 역사는 이 행성 위에서만 중요하지, 우주의 맥락에서는 완전히 무시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지구에서 삶을 여행하는 우리 몸이 지닌 운동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이 안내서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주의 구성원으로 평생 해야 할 지구별 여행에 필요한 운동에 앞서 ‘준비운동’이라 생각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우주도 시작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고갱이 던진 첫 번째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와 닿아 있다. 여기엔 두 발로 걷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로 인류의 특권인 (해서 우리 조상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한) ‘이동Locomotion’의 의미가 담겨 있다. ‘Locomotion’은 운동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데, ‘loco’는 위치나 공간 그리고 ‘Motion’은 운동과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정말 우주의 시작이 이 안내서가 얘기하고자 하는 운동과 관련이 있을까?
우주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도 큰 화두였다. 플라톤(Plato, 기원전 427-347)은《티마이오스Timaios》에서 “우주는 제작자가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고 했다. 반면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96-55)는《만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원자의 우발적인 마주침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무한한 원자들과 그것들의 운동이 우주를 생성했으며, 여기엔 제작자나 창조주 혹은 형상과 같은 선재 된 의미는 전혀 설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주는 물질적인 원자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으로 그리고 의미는 무의미의 공간 속에서 우연히 생성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1](중국의 철학자 왕충[王充, 27-104] 역시 “세상 만물은 모두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동양의 현인들은 우주의 시작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사상가 노자(老子, 기원전 571-471)로 추정는 우주에 대해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우주 만물의 진리를 ‘도道’라 했다. 그의 말을 기록한 《노자》1장에는 “무명無名은 만물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기록돼 있다.《노자》42장에서 그는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하나’가 무분별한, 즉 구별되지 않는 관계 원리나 무질서를 상징한다면 ‘둘과 셋’이란 것은 분별과 식별의 원리나 질서를 상징한다. 바로 이런 무명과 유명의 두 계기를 통해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이해했던 것.[2]
노자의 사유가 이어져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까지 중국을 지배하던 왕조)시대에 쓰인《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는 우주의 시작에 관한 단서가 실려 있다. 이 책의 ‘천문훈天文訓’ 편에 따르면 우주의 시작은 신이 아니라 기氣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다. 기가 저절로 나누어져서 하늘과 땅을 만들어 낸다. 이어서 하늘은 양陽이라는 기를 분출하고 땅은 음陰이라는 기를 분출하여 사계절을 낳게 된다. 하늘과 땅, 음과 양 그리고 사계절이 갖춰진 뒤, 이런 조건하에서 마침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동양의 우주론Cosmogony, 우주생성론은 한마디로 “모든 것은 기가 모여 발생하고, 기가 흩어지면 다시 사라진다”로 압축할 수 있다. 이 간단한 우주론은 동양의 형이상학Metaphysics[3]인 성리학의 기초가 되었고, 양자역학의 이론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동서양의 우주론을 살펴보면 둘 사이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서양의 기독교 창조론을 살펴보면, 강한 인간중심주의적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이 신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신으로부터 땅과 모든 다른 생명에 대한 절대적 주권을 부여받았다는 대목에서 인간중심주의적 색체는 숨길 수 없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서양의 우주론은 신이 초월적 위상을 갖고 있다. 반면 신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되는 동양의 전통에서 인간은 자신이 다른 생명체에 비해 월등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모두 동일한 기의 한 가지 상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
따라서 동양의 우주론에서 기는 단지 내재적 위상을 갖고 있을 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거대한 우주의 가족으로 생각한다. 고대 인도의 철학서《우파니샤드Upaniṣad》의 둘이 아닌 오직 하나인 ‘범아일여梵我一如‘, 즉 우리 밖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의 실체와 우리 안에 펼쳐진 자아의 본질은 하나라는 가르침과 일치한다[4](이 때문에 지구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개발과 보전 등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 ‘생태철학환경철학’이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의 사유나 동양 철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지만 사실 기독교가 유입되기 이전에도 서양에는 내재주의적 우주론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ism로 불리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앞서 말한 루크레티우스가 대표적 인물. 하지만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로 상징되는 초월주의가 너무도 힘이 강했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5] 이처럼 관점이 다른 동서양의 우주론으로 인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서양을 따른다면 우리는 자신이나 사물들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는 결과가 중요한, (정지 느낌의) ‘탐구자’가 된다. 반면 동양을 따른다면 우리는 새로운 마주침 혹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과정이 중요한, (운동 느낌의) ‘여행자’가 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관점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 다른 관점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고대인에게 우주론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를 알아야 전체 생물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전체 생물의 삶을 알아야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의 삶을 알아야 나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주가 생긴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다면 우주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고대인의 질문을 이어받아 답을 찾기 위해 병마와 평생 싸워가면서 혹은 죽음을 무릎쓰면서까지 우주와 생명에 관한 호기심을 왜 멈출 수 없었을까? 인류가 천문학적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주와 생명이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이유는 ‘시작점Start Point’에 있기 때문이다.
시작점을 알아야만 흩어졌던 자연의 법칙들이 단일한 방정식으로 통합되고 우주 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호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단 하나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이 이용하게 한 만용의 대가로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운명에 처할 위험이 있을 만큼, 인류의 능력밖에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과연 우리의 유한한 몸과 마음이 무한한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20세기 호모 사피엔스 후손들의 도전으로 인해 우리 지구가 광활한 우주 속 모래 한 알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탄생 시점을 가진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속 팽창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이 휘어져 있고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인류는 자연에 관한 위대한 두 이론을 발견했다. 하나는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중력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Theory of General Relativity’. 다른 하나는 고전역학인 뉴턴 물리학을 포용하면서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양자론’.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1900년에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가 (뉴턴이 중력의 존재를 발견한 것에 비견되는) ‘플랑크 상수(ℎ)’, 즉 빛 에너지와 진동수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 상수를 발견한 것이 시초(공식은 ℎ=E/f이다. E=ℎf=mc2).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규모인 분자나 원자 같은 미시계Microscopic System의 현상을 다룬다(양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단위를 말한다[6]).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보다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일은 앞뒤가 맞지 않아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기본 입자들은 걸핏하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물질이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하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분야를 창시한 세기의 천재들조차 양자 세상이 보여주는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양자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 이론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 닐스 보어, 19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시각화에 적합한 언어로는 양자 점프를 설명할 수 없다.” - 막스 보른, 195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 리처드 파인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어쩌면 장자(莊子, 기원전 369-289)가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져버려 어디에나 있다”고 한 ‘도道’의 사상과 닿아 있는, 아인슈타인조차도 “어쩌면 신이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고 한, 이제는 최첨단 CG와 과학으로 무장한 SF영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양자 영역Quantum Realm’이라 불리는 곳. 그곳은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느끼거나 볼 수 없는 기본입자와 빛의 세계다. 거시 세계의 바다는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기층과 맞닿는 지점에서 끝난다.
반면 양자 세계는 어디에나 있다. 바다에도, 땅에도,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속에도, 빛 속에도, 우주 공간에도 있다. 심지어 ‘텅 빈’ 허공에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이 세계에 발을 들이는 데에는 수천 년이 걸렸다. 양자 세계로 이어진 문이 아주 작은 것들 안에 깊숙이 파묻혀 있기 때문.[7] 이에 반해 고전 역학은 우리 일상생활 또는 지구와 같은 매우 큰 규모에서 일어나는 거시계Macroscopic System의 현상을 다룬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것뿐만 아니라 지금껏 인식되지 않았던 힘, 즉 우주의 운행을 지배하는 힘의 영역을 양자역학이 설명해준다.
우주에는 물질에 작용하는 ‘기본 힘’ 네 가지가 있다. 아직 중력 입자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친숙한 ‘중력Gravitational Force’, 전기와 자기가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주는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 강력’, 원자핵 안에서 방사능 붕괴 또는 핵분열을 일으키는 ‘약한 핵력Weak Nuclear Force, 약력’으로 이를 ‘기본 상호작용Fundamental Interaction’이라 부른다(강력> 전자기력> 중력> 약력 순으로 세다). 기본 상호작용은 결국 끌어당기는 인력Attraction[8]으로 모여들게 하거나, 밀어내는 척력Repulsion[9]으로 흩어지거나 둘 중 하나다. 한마디로 작용과 반작용, 음과 양이 공존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앞서 얘기한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떠올려보라).
이처럼 우주가 실은 에너지들이 모여 형성하는, 플랑크가 주장한 ‘힘의 장Field of Force’[10]이라는 보이지 않는 배경의 한 구성요소일 뿐이며 이것이 만물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에는 (접촉해야 작용하는 힘인 탄성력ㆍ마찰력 등과 달리 접촉하지 않고도) 네 가지 기본 힘이 상호작용하는 중력장ㆍ전자기장ㆍ강력장ㆍ약력장 같은 연속적인 에너지 흐름의 ‘양자장Quantum Field’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물질의 생성과 소멸의 상호작용이 일어남을 말한다(이 네 가지의 장을 하나로 통합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모든 것의 이론, 즉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이다). 이 장들은 우주 탄생 시기엔 모두 하나였다. 한마디로 우주의 모든 입자는 이 양자장의 발현체에 불과하며, 이 장들이 모든 것과 모든 것을 이어준다. 하나가 전부이고, 전부가 하나이다(이 역시 이 책의 핵심 중 하나인 동시에 몸과 마음 그리고 움직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플랑크의 통찰은 우리가 우주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원주의를 버리고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전일적Holistic[11] 우주관으로 눈을 돌려야 함을 일깨워주었다.[12]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장Field은 입자를 지배하는 유일한 힘”이라며 ‘모든 물질을 지배하는 배후의 에너지’라고 했다. 덧붙여 다음과 같이 우주를 형성하는 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새로운 종류의 물리학에는 장과 물질 모두를 위한 자리는 없다. 왜냐하면 장만이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13](그의 유명한 공식 질량ㆍ에너지 등가공식 E=mc2을 떠올려보라. 물질과 에너지가 본래부터 서로 하나로 얽혀 있는 관계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흥미롭게도 물질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이 에너지장은 형이상학자들이 ‘영Spirit’이라 부르는 보이지 않은 장과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Spirit는 라틴어로 ‘호흡’을 의미하는 ‘스피리투스Spiritus’에서 나왔고, 같은 뜻의 그리스어 ‘프네우마Pneuma’는 ‘뉴매틱Pneumatic, 공기의, 공기가 들어찬’이라는 낱말의 어원이다.[14]
양자역학은 우주의 거시 규모를 연구할 때조차 양자역학적 미시 규모 효과를 무시할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우주 탄생의 매우 이른 초기에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비록 우리 중에서 양자 세계의 파동-입자 이중성에 대해 알고 있거나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사실 양자역학은 트랜지스터, 컴퓨터 칩, 그리고 이런 장치에 의존하는 모든 디지털 기술을 뒷받침하는 과학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송 전파, 전화국, 무선통신중계기, 무선 모뎀 등을 통한 정보의 송신과 수신은 모두 맥스웰과 헤르츠가 발견한 보이지 않는 양자 영역의 전자기파를 통해 이루어진다.
1966년에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옳고 어떤 합리적 조건들이 만족한다면 우주가 어느 시점, 즉 ‘특이점Singularity’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이후 ‘무경계 제안No-Boundary Proposal’으로 특이점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만물의 네 가지 기본 요소인 공간과 시간 그리고 물질과 에너지가 분리되지 않고 원자보다 작은 하나의 점으로 뭉쳐 있던 (굳이 말하자면 시간이 0이었던 혹은 0에 아주 가까웠던) 시점인 특이점. 이는 물리학의 모든 법칙과 시간의 작동이 멈추는 무한대의 밀도와 온도를 가진 지점으로 블랙홀 한가운데와 같은 곳이다(블랙홀과 우주의 생성과정은 서로 닮았다).
현재까지도 인류의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으로 우주가 무한히 존재한 것이 아니라 (우주 나이는 빅뱅 이론과 위성 관측 이후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 약 138억년[15] 전의 어느 특정 시점에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내용이었다.
로저 펜로즈와 내가 입증한 정리가 우주에 시작이 있었으리라는 점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 시작의 본질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 정리에서는 우주가 빅뱅 때 시작되었고, 그 순간에 우주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무한대의 밀도를 가지는 하나의 점, 즉 시공간 특이점 안에 모조리 다 구겨져 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무너진다. 따라서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싶어도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 일반상대성이론은 쓸 수가 없다. 우주의 기원은 과학의 범주 바깥에 남아 있다.
– 스티븐 호킹의《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중에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우주의 시작점 유무에 관한 문제는 “별이 가득한 하늘과 도덕법칙이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우주에 시작점이 있는지 없었는지는 모두 정당화될 수 있어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논리적 모순 또는 반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만일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면, 왜 우주는 시작되기 전 무한한 시간 동안 기다렸을까? (그는《순수이성비판》보다 26년이나 앞서《우주자연의 역사와 하늘의 이론》을 펴내 과학사에 족적을 남겼다.)
근대 철학의 창시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이것을 '테제These, 정립'라고 했다. 반면, 만일 우주가 영원토록 존재해왔다면 왜 현재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무한한 시간이 걸렸을까? 그는 이것을 ‘안티테제Antithese, 반정립’라고 했다. 즉, 이성으로는 답을 알 수 없다는 뜻. 그런데 이 두 명제 모두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가정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시간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흘러와서 무한한 미래로 향해 가며 그사이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우주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었다.[16] 하지만 20세기 과학자들은 절대 시간을 상식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공간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며, 공간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발견의 열쇠가 된 것은 빛의 성질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고, 동양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17]
철학적 질문과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호기심 많은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들은 우주를 향한 모험을 떠나기로 한다. 1969년 달 표면에 인류의 첫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긴 이후, 인류가 우주의 시작점을 알기 위해 우주 탐사선을 쏘아 올린 것. 그것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그리고 가장 멀리 등속직선운동으로 움직인 물체이기도 하다. 1977년 8월 20일, 미국에서 발사된 무게 722kg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Voyager 2호가 그 주인공(보이저 1호보다 보름 먼저 발사됐다).
2018년 12월 11일, 보이저 2호는 태양계Solar System를 넘어 드디어 성간Interstellar Space에 진입했다. 발사 이후 41년 동안 297억7천200만㎞를 항해한 끝에 이뤄낸 결과다. 가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로 칭송받을만하다. 인류의 지적 호기심을 담은 이 탐사선의 움직임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인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더불어 WMAP[18] 관측위성과 플랑크Planck 위성 그리고 허블 망원경과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 전파 망원경이 인류에게 우주의 시작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알게 해주었다.
■ 다음 연재 글: <운동 안내서>는 매주 일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1부 – 안내서에 대한 안내서: 움직인다는 것
1장. 움직인다는 것_태초에 움직임이 있었으니
시작은 Movement
• 태초의 고요한 움직임
[1] ‘2.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강신주의《철학 VS 철학: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서양 편 중에서
[2] ‘4.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인가?’, 강신주의《철학 VS 철학: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동양 편 중에서
[3] 저자 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로 존재의 실체와 궁극적인 원리를 감각이 아닌 순수한 사고를 통해 알고자 하는 학문.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을 통해, 우주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파악하려 하며, 사물의 배후에 있는 구조와 본질을 밝히고자 함.
[4] ‘일원론의 시작’, 전자책, 채사장의《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제로: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중에서
[5] ‘2.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강신주의《철학 VS 철학: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서양 편 중에서
[6] p122, p123 스티븐 호킹의《시간의 역사: 짧고 쉽게 쓴》중에서
[7] p154, 전자책, 크리스토프 갈파르의《우주, 시간, 그 너머: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중에서
[8] 저자 주: 인력을 ‘Gravitation’, 즉 만유인력으로 부르는 것은 중력은 오직 인력만 있기 때문이다.
[9] 저자 주: 전자기력, 강력, 약력은 인력과 척력이 공존한다.
[10] 저자 주: 장Field은 공간상의 각 지점마다 다른 값을 갖는 물리량으로 힘이 미치는 공간을 말한다. 전기장, 자기장과 중력장은 힘의 장의 예이다.
[11] 저자 주: Holistic. ‘온’, ‘모든’을 뜻하는 그리스어 Holo에서 유래한 단어로 개별요소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 모두 내면적으로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요한 관점 중 하나다.
[12] P195, 브루스 H. 립튼, 스티브 베어맨의《자발적 진화: 인류의 경이로운 미래상을 펼쳐 보여주는 신생물학의 거대담론》중에서
[13] p198, 브루스 H. 립튼, 스티브 베어맨의《자발적 진화: 인류의 경이로운 미래상을 펼쳐 보여주는 신생물학의 거대담론》중에서
[14] p198, 브루스 H. 립튼, 스티브 베어맨의《자발적 진화: 인류의 경이로운 미래상을 펼쳐 보여주는 신생물학의 거대담론》중에서
[15] 《우주배경복사의 플랑크 지도》“2018년 플랑크 위성 데이터는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이라고 밝혔다.” - wouldyoulike.org
[16] p33, 전자책, 스티븐 호킹의《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중에서
[17] p43, ‘뉴턴의 우주’, 스티븐 호킹의《시간의 역사: 짧고 쉽게 쓴》중에서
[18]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윌킨슨 마이크로파 비등방성 탐색기’로 우주배경복사 탐사위성이다. 2001년에 발사된 WMAP은 우주배경복사에서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 우주망원경이었다. <위키백과사전>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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