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당신의 주인이 아니다 - 1
앞선 글 <[운동 안내서] 아름다운 순환과 우발적 마주침>에서 체중 70kg 정도의 성인은 평균 10kg 정도의 단백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근육이나 힘줄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수천 가지 형태 속에도 존재한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서 몇 년에 이르는 것까지 종류에 따라 수명도 다르지만, 대체로 300~400g 정도의 단백질이 날마다 사라지고 대체된다.
예를 들어 근육 단백질의 거의 절반은 미오신 섬유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평균 1~2%가 매일 새로운 단백질 분자로 대체된다. 이처럼 사라지는 몸속 단백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식품 섭취를 통해 체중 1kg 당 0.5~0.8g의 단백질을 공급해야 한다.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복잡하고 큰 분자인 단백질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으로 효소ㆍ호르몬ㆍ항체 등의 주요 생체 기능을 수행하고 근육 등의 체조직을 구성한다.
부족하게 되면 영양실조ㆍ지방간ㆍ근육감소 및 골절 위험증가ㆍ면역체계 손상으로 인한 감염 증가ㆍ어린이의 경우 성장 둔화 등 건강상 문제점이 발생한다. 단백질 영어명 Protein이 그리스어의 'Preteios 중요한 것'에서 유래한 이유이기도 하다. 화학식은 (NH2CHRnCOOH)n이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백질은 몸의 모양을 만들거나 몸에서 생명 현상이 일어나는 데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또한 우리 몸에서 유용한 것 대부분이 단백질이다. 왜냐하면
움직임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체 단백질의 수는 약 10만 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화학반응의 촉매 역할을 하는 효소, 화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호르몬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공격해 면역을 담당 항체도 단백질이다. 가장 큰 단백질은 티틴(Titin)으로, 근육의 탄성 조절을 돕는다. 티틴을 화학적으로 기술하며 문자 189,819개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세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모든 진핵세포 안에는 3가지 단백질 섬유가 있다. 근육 이외의 세포에도 많은 이중 나선구조의 액틴(Actin), 근육에 많으며 근육의 수축과 이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오신(Myosin)이 있다. 그리고 튜불린(Tubulin) 단백질로 구성된 미세소관(Microtubule)이 있다. 우리 몸을 지탱하기 위해 뼈대가 있듯이, 식물과 동물의 모든 세포에도 골격이 존재한다. 세포골격(Cytoskeleton)을 이루는 것이 바로 미세소관이다.
세포 이동이나 세포 내 물질 이동은 이들 단백질 섬유와 운동단백질(Motor protein)[1]이라 불리는 특정효소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운동단백질 중 하나인 액틴과 미오신이 결합하여 운동성을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세포는 자발적인 진동,
즉 ‘근원적 움직임Myogenic Movement’[2]
을 가진다.
운동단백질이 없다면 세포의 이동이나 세포 내 물질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으로 적혈구ㆍ정자ㆍ난자처럼 홀로 일하는 세포도 존재하며, 근육세포 무리를 이뤄 움직이는 골격근과 내장근육도 존재한다. 이들의 운동도 액틴과 미오신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난다.
또한 이들의 움직임에 특정 효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포는 화학반응을 매개하는 단백질 촉매인, 예를 들면 ATP 합성효소 같은 효소가 없다면 생물학적 반응들이 너무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운동단백질의 진동, 즉 움직임이 효소 기능에 엄청난 영향을 초래한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3] 효소의 전체 구조나 다른 특성의 변화 없이 운동단백질의 움직임만 차단해도 효소가 수행하는 화학반응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몸속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대해보면, 우리는 내적 성장이나 삶의 발전 그리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가장 밑바닥의 차원에서 본다면, 생명이란 생화학적 장치 속의 분자의 움직임으로부터 파생되는 무엇이라는 점에서는 전통과학과 첨단과학이 모두 동의한다.
- 부르스 H. 립튼과 스티브 베어맨의《자발적 진화》중에서
이처럼 근원적 움직임을 가지는 세포에서 움직이는 부분은 단백질이라 불리는 분자다. 세포가 인체를 건축하는 벽돌이라고 한다면, 단백질은 스스로 조립되고 서로 작용하여 세포의 행동과 기능을 일으켜내는 물리적인 벽돌이다. 여기서 유전자가 하는 일은 단백질을 만들 명령문을 제공하는 것이다.
각각의 단백질은 고유의 구조와 크기를 갖는데 종류만 15만 개가 넘고, 이 또한 추정치일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계도 상당히 복잡하지만, 세포 속의 이 정교한 기술에 비하면 인간의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명의 으뜸가는 성질은 움직임이며, 몸속 단백질이 움직임을 멈추면 우리는 송장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생명은 단백질 분자를 움직여서 행동을 일으키는 힘
그 자체인 것이다.[4]
이러한 힘을 지닌 단백질 분자들이 그룹을 이루어 특정한 생물학적 기능을 제공하는데, 이를 ‘경로(Pathway)’라고 부른다. 호흡을 담당하는 호흡 경로, 음식을 소화시키는 소화 경로, 몸의 움직임을 만드는 근육수축 경로는 그러한 작용을 하는 단백질 분자들의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먹는 음식, 만나는 사람들, 심지어 보고 듣는 뉴스까지 모든 것이 단백질 분자들의 움직임을 촉발시켜 행동을 일으키는 ‘환경 신호(Environmental signal)’에 해당한다.
여기서 환경이란 말은 우리의 살갗 끝에서부터 우주의 끝, 그 사이에 있는 삼라만상을 의미하며 이것이 가장 큰 의미의 환경이다. 지구 생명의 역사는 생명체와 그 환경의 상호작용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물리적 형태와 특성은 환경에 의해 규정된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환경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내는 능력이 있다.
고 했다(다만 그 새로운 환경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해로운 환경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단백질 분자와 그에 상응하는 환경 신호의 결합은 단백질 분자의 모양을 바꿔 놓고, 그 모양 자체가 가진 성질에 의해서 그 변화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마치 자물통에 열쇠가 맞아 들어가듯이 정확하고 긴밀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절멸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들로 인한 환경오염이다. 이 물질들은 식물과 동물의 세포조직에 축적되는데, 심할 경우 세포를 뚫고 침입해 유전물질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미래 세계의 건설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인위적으로 인간 형질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부주의로 방사능을 비롯한 여러 화학물질이 유전자 돌연변이 등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살충제 선택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이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레이첼 카슨의《침묵의 봄》중에서[5]
세포는 이 단백질 분자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호흡, 소화, 근육수축 등과 같은 생명을 지탱해주는 단백질 경로를 가동한다. 단백질의 움직임이 세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열쇠를 꽂아서 돌려야 한다. 차 스스로가 시동을 걸고 움직일 수는 없다. 결국 열쇠를 돌리는 사람이 실제로 차를 통제하는 것이다. 유전자가 자동차라면, 열쇠는 환경이다. 그리고 열쇠를 돌리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다시 말해 유전과 환경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음과 양이 대립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것과 같다.
따라서 유전과 환경,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풀리지 않던 것들이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풀리기 시작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지 말지, 적절한 수면을 취할지 말지, 적당한 운동을 할지 말지,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가려서 볼지 말지, 플라스틱을 사용할지 말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화학물질을 무분별하게 사용할지 말지, 항생제를 남용할지 말지... 이 모든 것의 선택권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건강과 노화의 속도, 암의 발현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발전을 거듭한 현대 유전학의 시각으로는 DNA 염기서열 정보만으로 우리가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유전체 해독을 통한 유전자 정보도 중요하지만, 그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발현돼 세포와 조직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아는 것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DNA 염기서열만 들여다봐서는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발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후성유전체는 환경 변화로 인해 유전자의 행동이 변하는 생체 작용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선천적 질병이 한 가지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후성유전학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DNA 메틸화 현상(DNA methylation)’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메틸이라는 화학물질이 특정 유전자에 달라붙어서 유전자 스위치를 끄거나 켜는 역할을 하는 것이 후성유전학 이론이다.[6] 메틸화가 일어나면 몸속에서 유전자의 활동이 억제되거나 약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지만, 유전자 발현 기능 스위치를 켜고 끄는 건 후천적 환경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특히 메틸화는 생활 방식이나 기호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운동부족ㆍ다이어트ㆍ환경호르몬ㆍ화학물질ㆍ흡연ㆍ약품 등이 메틸화의 주원인이다.
결국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쌍둥이도 메틸화를 통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도 생활환경에 따라 한쪽은 병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가 켜져 있고, 한쪽은 유전자가 꺼져 있는 것이다.[7]
예를 들면 먹는 음식에 따라 DNA 메틸화가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특히 임신 기간 동안 식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많은 기준을 제시해준다. 단순히 기형아 출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임신 중, 혹은 평소의 식습관에 따라 우리의 유전자는 DNA 메틸화라는 변화를 겪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스트레스도 유전자 발현 스위치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스트레스 학자들이 밝혀낸 것은 스트레스를 겪은 시기에 따라 키가 크지 않을 수도 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보일 수 있으며, 각종 질환을 겪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스트레스로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사람, 혹은 질병이 많이 발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이러한 건강의 변화는 일생 동안 계속된다. 이처럼 후성유전체는 환경 변화로 인해 유전자의 행동이 변하는 생체 작용이다.
현시점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가 현재의 우리보다 더 제한적일 수도 있다. 만일 현재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하거나 형편없는 선택을 하거나 나쁜 습관을 갖는다면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보다 더 상황이 나쁠 것이다. 때로는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술집에서 한잔 더 마시는 것처럼 무해해 보이는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번 켜진 질병 유전자 스위치는 평생을 괴롭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부 환경과 우리가 선택한 생활습관 모두가 유전자 스위치가 꺼지고 켜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향 중 일부는 1, 2세대 이상 유전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세포생물학자이자《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저자인 부르스 H. 립튼이 "당신의 주인은 유전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유전자는 단지 분자 차원의 설계도인 동시에 생명에 의해 사용될 뿐 생명을 지배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침묵의 봄》저자이자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다음 말을 기억하라.
인간의 건강은 환경 상태의 궁극적인 반영이다.
동양의 사고방식은 인간은 자연과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구의 사고방식은 인간을 환경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인간과 주변 환경이 주고받는 영향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일방적 관계이거나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하나를 바꾸면 다른 하나가 변화한다. 환경은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미시세계 속 세포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인이다(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로 인해 활동이 줄어들면서 지구 환경의 일부분은 좋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플라스틱의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이고 거대한 생명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구의 환경과 일상의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세포를 병들게 하고, 원치 않는 유전자 발현으로 우리 스스로를 죽게 만드는 일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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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장된 에너지를 방향이 있는 이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단백질로 미오신, 키네신, 디네인이 있다 -《인체생리학-5판》2011, 라이프사이언스
[2] (심장 박동 등이) 근육 조직에서 발생하는, 근원성(筋原性)의 -《네이버 사전》
[3] <효소기능에 필수적인 움직임> 생명과학 KISTI, 2011.4.12
[4] p68, 부르스 H. 립튼, 스티브 베어맨의《자발적 진화》
[5] p18, 전자책, 레이첼 카슨의《침묵의 봄》
[6] p108, 전자책, 권용철의《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
[7] <유전자가똑같은데둘의외모·질병왜달라지는거죠?> 서울신문, 2013.6.3
이미지: <방사능 오염에 두 입 가진 돌연변이 물고기> 서울신문, 2018.11.28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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