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의 세계
앞선 글 <[운동 안내서] 몸의 지배자 | 무엇이 우리 몸을 지배하는가?>, <[운동 안내서] 내 몸속 우주 : 미생물과의 공생>에 이어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관련 과학계가 미생물 생태계 지도를 만들고 있는 요즘은 미생물과 생태계를 합성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란 용어를 사용한다.[1] 이는 우리 몸속 39조 개의 미생물과 그 유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생태계에는 세균ㆍ고세균ㆍ원생생물ㆍ균류 및 바이러스가 포함된다. 원시세균이라 불리는 고세균(Archaea)은 오랫동안 그저 세균이라고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생물군에 속한다.
고세균은 아주 단순하며 세포핵이 없다는 점에서 세균과 아주 흡사하지만, 인간에게 큰 혜택을 제공하는 반면에 질병을 일으키는 사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가장 흔한 것이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 메탄생성균(Methanogens)으로 산소가 없는 환경에 살면서 메탄가스를 생성한다.
몸속 미생물 생태계는 사실 단순한 집단들의 모임이 아니다. 신체 부위마다 서로 다른 미생물이 서식하며 특수한 역할을 수행한다. 입속에 사는 미생물들은 피부나 장속에 사는 미생물들과 다르다. 한마디로 우리 몸 위치에 따라 기거하는 미생물 종류와 양은 다양하다. 우선 남성보다 여성에 더 다양한 미생물 집단이 사는데, 이러한 차이는 아무리 손을 씻어도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또한 사람 왼손에 사는 미생물과 오른손에 사는 미생물도 서로 다르다. 양손을 맞잡거나 동시에 같은 물건을 만져도 마찬가지다. 발에 사는 무좀균이 얼굴에 닿아도 크게 번식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치아 하나도 어느 쪽 면인가에 따라 서식하는 미생물이 다를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는 우리에게 유익한 세균을 총칭하는 말로 대표적으로 유산균이 이에 속하고 발효식품 속에 많다.
이처럼 다양한 미생물이 몸의 표면과 속에서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생물이 가장 많이 사는 최적의 보금자리는 어디일까? 바로 소화기관, 즉 ‘장(Gut)’이다. 장속의 미생물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미생물 생태계를 이룬다. 길이 약 6~9미터에 이르는 인간의 장은 구석구석에 은신처와 갈라진 틈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장은 우리가 섭취가 음식을 가공하고 소화하며 다양한 미생물의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한다. 따뜻하고,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하며, 편리한 하수도 시설까지 갖춘 이 보금자리는 미생물 입장에서 꿈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이 공간은 구강ㆍ식도ㆍ위장ㆍ소장(십이지장ㆍ공장ㆍ회장)ㆍ결장(상생결장ㆍ횡행결장ㆍ하행결장)ㆍ직장으로 구별된다. 미생물의 수는 위에서 직장으로 이동하면서 증가하고 결장에 가장 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미생물을 ‘지원 기관(Supporting Organ)’이라 부를 정도로 체내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장내 세균은 복합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독성 화합물을 무력화시키며 특정 아미노산과 비타민(비타민 B 복합체 등)의 합성에 일조하고 신진대사에 영향을 주는 화합물 생성에 도움을 준다.[2]
반면에 건강한 사람의 뇌ㆍ심장ㆍ폐ㆍ신장ㆍ방광 등의 장기에는 세균이 없고, 뼈나 근육 등의 조직이나 혈액 그리고 분비 전의 침과 같은 체액에도 세균이 없다. 참고로 침의 성분은 99%가 수분이라 물과 거의 같아 보이지만, 나머지 1%에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여러 가지 비밀들이 숨어 있다. 1%에는 소화효소인 아밀레이스를 비롯해, 뮤신ㆍ아미노산ㆍ나트륨 등 다양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엄마 뱃속의 아기도 세균이 없다.
그런데
왜 인간의 유전자 연구를 넘어,
미생물 유전자 정보까지 연구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몰랐지만 비만ㆍ관절염ㆍ자폐증ㆍ우울증 등 수많은 질병과 우리 몸속 미생물 사이의 관련성을 담은 새로운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향후 관련 질병 치료가 더 효과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약물, 음식은 물론 형제 가운데 맏이인지, 섹스 파트너가 몇 명인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미생물은 인간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속에 사는 미생물이 우리의 질병과 건강은 물론 마음ㆍ기분ㆍ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정말 미생물이 우리의 행동까지 관여하는 것이 사실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생물이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길은 너무 많다. 미생물은 장속에 구축한 막강한 생태계를 기반으로 음식을 소화하고 약물을 흡수하고, 호르몬을 분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면역계 상호작용을 통해 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생물과 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한 방식을 '미생물총 유전자-장-뇌 연결축'[3]이라고 하는데, 이를 이해하는 것은 정신질환과 신경계를 이해하는 데 깊은 통찰을 준다. ‘장속의 뇌’, ‘제2의 뇌’, ‘제2의 게놈’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처럼 장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체험적으로 알려져 왔지만, 과학자들이 인간과 체내 세균 간의 복잡하고 친밀한 생화학적 상호 작용에 대해 알게 된 지는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제 우울증이 염증 반응과 관련이 있으며, 장속에 있는 수많은 유익한 세균들이 낙산염 같은 짧은사슬지방산을 생산하여 염증을 가라앉히는 장점막 세포에 영양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들어 오실리박터라는 세균이 뇌에서 신경 활성을 가라앉혀 우울증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 GABA와 작용이 비슷한 천연 신경안정제를 생산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생물총 유전자와 인간의 우울증을 관련짓게 되었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에 등 흙속의 미생물이 인간의 면역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알려졌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미생물을 이용하여 스트레스나 우울증 예방주사를 개발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4 특히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그레이엄 룩은 인간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게 되면서 ‘옛 친구들’, 즉 오랜 역사 동안 노출되어왔던 흙속의 미생물들과 더이상 충분히 접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뇨병, 관절염, 심지어 우울증 등 염증과 관련된 질병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롭 라이트, 브랜던 블러의 <내 몸속의 우주> 중에서[4]
우리 몸속 미생물은 우리가 제공하는 의식주에 전적으로 기대어 산다. 마치 기생충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미생물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다. 그래서 공생균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공생 관계를 깨뜨리고 있다. 항생제ㆍ가공식품ㆍ제왕절개 수술ㆍ과도한 식이요법 등은 몸속 생태계를 파괴한다. 왜 우리가 의학이 발전함에도 만성적 질환들에 점점 더 시달릴 수밖에 없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약 100만 종의 미생물 중에서 일부 약 1,415종만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100만 종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지만 이 작은 존재들은 전 세계 인류의 사망 원인의 3분이 1을 차지한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중 하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바이러스는 이 행성의 주인이야말로 자신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4억 명이나 감염시켰고, 무려 576만 명을 사망케 했다(2022.2.10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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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생물 위한 ‘노아의 방주’ 만든다> 사이언스타임즈, 2020.06.15
[2] P23, 전자책, 데이브 아스프리의 《최강의 단식》
[3] <‘장-뇌’ 사이를 이어주는 장내 미생물> 사이언스온, 2017.7.3
[4] P45, 전자책, 롭 나이트 & 브랜던 블러의 《내 몸속의 우주》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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