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무수한 기회와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고, 그 결과로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기도 한다. 범상치 않은 위인이야 그런 순간에도 초심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우리의 경우는 좀 다르다. 나 역시 그런 인생의 변곡점은 여러 번 찾아왔던 것 같다. 그 수많은 변곡점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지 싶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의 최초의 변곡점은 단기 해외 연수 경험이었다.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대학생은 너 나 할 것 없이 해외 연수를 취업의 필수 코스처럼 여겼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안 좋았던 나에게 해외 연수는 그림의 떡이었다. 나는 해외 연수를 꼭 가고 싶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해 연수비를 벌었지만 그 비용을 전부를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염치 불고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욕심을 부렸다. 아마도 내 인생의 최초이자 최대의 욕심 아니었나 싶다.
막상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나는 영어 공부도 공부지만, 당시 선진국이던 그들의 시스템에 적잖이 놀랐다. ‘길가의 거지도 캐나다 거지는 부자’라는 말을 할 정도로, 캐나다는 국민들을 위한 복지 혜택이 잘 정비된 나라였다. 기본적으로 이민으로 출발한 나라였기에 어떤 이민 시스템이 있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캐나다의 경우는 미국과 좀 다른 기조가 있다고 느껴졌다. 캐나다에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원국가의 언어를 공부하는 학교들이 즐비했다. 원국가의 언어를 써도 좋지만 캐나다 인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 그들의 포용력 있는 이민 정책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관공서에는 주요 이민자 그룹의 언어를 구사하는 공무원 수요가 높았다. 언어학이 캐나다에서 인기 전공인 이유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공대를 갔던 우리들과 딴판이었다.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것은 그 나라에는 경쟁 스트레스 없다는 점이었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든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든가 하는 우리의 거칠고 투쟁적인 목표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왜? 하는 의아스러운 표정들을 짓곤 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내재된 나의 의식이 무너졌다. 동시에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 정말 편협하고 좁은 생각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군가를 이겨 내가 쟁취해야 한다는 전투적 삶보다, 있는 것을 공유하고 타인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이민자의 나라로서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 것의 소중함을 인정받으려면 상대방의 것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중요한 진실도 느꼈다.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인정하면서도 조화 있게 살아가는 글로벌 시민의 자세를 배웠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는 나중에 내가 사회에 진출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 또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다. 하얀 카디건에 노란 원피스를 화사하게 입고 등장했던 아내와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이 만남의 파장이 단순한 만남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 직감했다. 그녀의 깊은 눈망울을 보면서 나는 그 눈에 빠져 허우적댈 나를 상상했다. 그녀의 머리 뒤로 광채를 느꼈다. 우리는 결국 결혼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그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갔다. 아내는 배려심이 많고 생각이 깊으면서도, 감정의 기복도 보였다. 그것은 마치 4분의 3박자 왈츠를 듣다가 가끔씩 속도를 달리한 변주곡을 연주하는 듯했다. 극단적이지 않은 기복 덕분에 연애는 권태로 흐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던져졌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깊어 다양한 독서를 하고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하던 그녀에게, 나는 송두리째 내 혼을 빼앗겨 버렸다. 그녀는 내가 탈출할 수 없게, 마법의 사슬로 날 묶어 버린 초능력을 가진 위험한 여자였다.
그녀를 만나고, 나는 동정이나 집착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앰패스(Empath)적 성향을 가졌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일면식도 없는 노인, 어린아이, 장애인 등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다. 동네에서도 골목이 어둡거나, 횡단보도의 도로 표지가 지워지거나 잘못되어 있으면, 어김없이 해당 관청에 신고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혹시 누군가 훼손된 표식 때문에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다. 이런 그녀의 성향은, 조금 완고하고 표현이 서툴며 적당히 타인에 대해 관심을 끄고 사는 나와는 정반대 성향이기 때문에, 내게는 배울 점이 많았다. 늘 나를 칭찬해 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녀를 보면서, 이 여자를 안 만났더라면 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승승장구해 그곳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하리라 생각했던 첫 회사를 나온 것도 새로운 변곡점이었다. 한국 경제의 큰 도약의 시기인 2000년대에 회사는 매해 성장을 거듭했는데, 난 그것을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 오판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권태감에도 빠졌었다. 급기야 새로운 도전으로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기대와 달리 새로 들어간 회사는 이질적인 문화는 둘째로 치더라도 업무의 강도와 필요한 지식이 달랐다. 나는 좌절하고 또 약간의 공황장애도 겪었다. 반대급부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인간의 행복이 연봉 등 경제적 수익이나 사회적 명예에 있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 나 자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 가운데 만난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두 번째 산』이란 책은 한줄기 빛처럼 내게 다가왔다. 입신양명을 위해 바쳤던 젊은 날이 지나고, 누구나 참담한 계곡을 경험한다. 조직에서 한직(閑職)으로 밀려나거나, 건강이 악화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두 번째 산』은 그런 인생의 변곡점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인생의 변곡점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삶의 커다란 목표는 변치 않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성적인 사색과 감성적인 선택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나갈 것이다. 새로운 결정은 나를 지금까지와 다른 삶의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조금은 다른 방향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조금 어색하거나 힘에 부치더라도, 결코 서두르거나 방황하면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인생의 변곡점도 내게 의미를 줄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