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행위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문득 인간이 언제부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걸 어려워하기 시작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렵 채집 생활을 영위하던 인간이 도시와 국가를 만들며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불평등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불평등은 공공재였던 재화를 개인이 소유하게 되면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개인 소유 의식으로 출발한 본격적인 경제 활동의 전기가 된 것은 산업혁명이었다.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했던 산업혁명이 여파로, 국가는 잘 교육된 노동력을 선별하는 시스템을 만들게 되면서 능력주의를 키우게 된다. 덕분에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의 다정한 온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웃을 경쟁 상대로만 간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현대의 눈부신 통신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고립을 가속화했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곤경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솔직한 표현 자체에 굉장한 부담과 용기가 필요하게 됐던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려면, 당사자들 사이에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상호 간의 신뢰가 부재된 상황 하에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방은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신뢰 속에서 이루어진 고백은 화자와 청자 사이에 강력한 연결 고리가 된다. 반대로 신뢰가 없는 상대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 자폭하는 것만큼이나 엄청나게 위태로운 일이다. 특히 자신이 애정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속 진심을 드러내는 고백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솔직한 말이 종종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직장에서의 직언이나 군주를 향한 충언이 대표적인 경우다. 나의 직언을 행여나 상사가 오해해 예의가 없다거나 감정적이라 느꼈다면, 그 사람은 회사를 하루빨리 나가야 할 궁리를 하는 것이 낫다. 역사의 현장에서도 그렇다. 혹시 불러올 오해와 복수를 방지하려면, 충언에도 적절한 감정 배제가 필요하다. 직언이나 충언이 속마음을 감정 없이 전달해야 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깊은 감정이 있어야 그 의미가 깊어지고 완성되는 특별한 경우도 있다. 바로 사랑의 고백이다. 특히, 남녀 간의 고백은 더 그렇다.
이쯤에서 아내와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나는 아내에게 고백한 적이 없다. 연애 때 아내는 나에게 고도의 작전을 썼는데, 이른바 잠수 작전이었다. 연애라는 돛단배가 한참 순항을 한다 싶을 때쯤, 사소한 일로 다투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잠수를 타는 방식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연인과 다툼 후에 SNS에 프로필 사진을 변경하거나, 아예 계정을 잠그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우리는 종종 싸우곤 했는데, 그럴 때면 당연히 통화가 안 되기도 했고, 문자도 ‘읽지 않음’ 상태로 있던 적이 많았다. 아내의 작전에 걸려 며칠 동안 쩔쩔매게 되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대로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언젠가 나는 헤어지자는 아내의 말에 ‘그러자’하고 쿨(?)하게 말하는 초강수를 썼다. 속으론 마음이 끊어지게 아팠지만, 매번 아내의 작전에 말려들어 감정이 요동치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야 마는 그런 패턴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물론 엄청난 불안과 긴장이 따라왔지만, 겉으로는 어느 때보다 태연해야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났을 때, 마침내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별로 긴 문자는 아니었다. ‘헤어지려고 했는데, 며칠을 지내다 보니 도저히 자기가 보고 싶어서 안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하얗게 눈이 오던 날, 진홍색 목도리를 두른 녹색 코트 차림의 아내는 길가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사랑한다 헤어질 수 없다 고백했다. 나는 진심의 힘을 믿었고, 우리가 맺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마음속에선 승리의 깃발이...
마음속에 고이 품었던 아름다운 사랑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고백은 모든 것을 이겨내야 가능한 매우 숭고한 행동이다. 사랑을 이뤄야 한다는 단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자존심도 부끄러움도, 때론 도리나 상식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상대에게 오직 자신의 사랑을 증명받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은 사회적 관념이나 둘을 갈라놓는 한계를 모두 이겨내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자존심이 세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던 아내가 내게 먼저 속마음을 고백했다는 것은, 사랑의 힘이 아내를 정말 단단하게 만들어서 가능했다 볼 수 있다. 그때 아내의 고백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속마음을 전달할 때는 반드시 사랑과 진정한 관심이 동반되어야 한다. 종종 사랑이 결여된 속마음은 '팩트 폭격'이라는 오명으로 남기도 한다. 내가 품었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 준 것뿐인데, 뭐 어떠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부재된 채, 있는 그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종종 듣는 이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모멸감을 줄 수 있음이 분명하다. 상대방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사실만 나열하는 것은 결코 이성적인 일이 아니다. 때문에 상대방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간이 그 잔인한 본성을 누르게 할 수 있는 자질이 인간의 이성이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행위는 연인이나 가족 사이에 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바람에 더 상처를 받았는 경우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잔인한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자주 언급되는 이유다. 나는 스스로 직선적인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직선적인 성격과 부족한 표현력이 합쳐져 스스로 최악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의 의중과는 전혀 달리 거칠게 내뱉은 말로 인해 가족들이 상처를 받았던 일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입힌 상처들로 인해 고통받았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마음을 드러내고 말로 표현하기 전에, 많이 생각하고 다시 한번 숙고의 시간을 갖자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