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인도로 출장 갔을 때 일이다. 긴 비행 끝에 마침내 비행기 문이 열렸을 때 훅하고 들어오는 덥고 습한 공기. 그리고 뭄바이 공항의 도착 로비 밖을 나갔을 때 어둠 속에서 은하수처럼 로비를 수놓던 나를 바라보던 그 눈망울들이 기억난다. 인도는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인크레더블 인디아(Incredible India)’,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흥미롭던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마을의 나무 그늘 아래마다 옹기종기 무리를 지어 있던 동네 남정네들이었다. 아침부터 목적지를 향해 차를 달리던 나에게 그들의 모습이 유난했는데, 단순히 모여 있기에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신문지를 얼굴에 덮기도 하고 낮잠을 자거나, 옆에 친구와 한담(閑談)을 나누고 있었다. 한참 출근해서 열심히 일할 시간인 오전 10시, 이들은 왜 이 시간에 한가롭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나무 그늘 아래서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인도 현지 거래처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알게 된 사실은, 바로 일자리의 부재, 높은 실업률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이니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한창 일할 남자들이 실의에 빠져 그저 놀고 잡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가 시스템이 붕괴된 지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만연한 절대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 나름대로 잘 적응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땅에는 어디에도 희망의 단초를 쥘 수 없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경쟁은 치열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우리 현실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었다.
2,500년 전 왕자로 태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고행 길에 올랐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야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어쩌면 현대의 인도의 청년들은 그 옛날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신실(信實)하게 실행하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하니 실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비웃을 처지가 아니란 사실에 경각심을 느낀다. 청년 실업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절대 빈곤의 인도만큼은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낙오를 필연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부모보다 더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고, 경제적인 자립을 이행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구직 활동을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 인구가 무려 50만에 이른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특히 빈곤층의 경우는 더 심하다. 숫자로 가늠 지어질 수 있는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무력감, 순응, 포기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심리적 빈곤이 더 문제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들어갈 틈새가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다. 대학생만 둘 있는 아버지라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착잡하다.
최근에 읽었던 철학자 한병철의 『불안 사회』는 희망의 특성을 제대로 정의해서 적잖이 놀랐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내용이었지만, 다시 한번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희망을 품으면 행동하게 되고, 행동하다 보면 가능성을 보게 된다. 가능성을 보면 지속하는 힘이 생기며, 꾸준히 매진하다 보면 이뤄진다. 행동 없는 희망은 희망이 아닌 백일몽에 불과하다. 희망은 과거를 생각하며 머물러 있지 않는다. 대신 미래지향적이다. 희망은 늘 사랑과 연대와 함께한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희망의 부질없음이다. 하지만 정작 이런 가장 단순한 진리들을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그다지 녹록지 않아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무력감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내가 내린 처방은 일단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에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방 안에 처박혀 지냈던 나를 이끌어 준 것은 선배 J였다. 둘리 만화에 나오는 마이꼴과 꼭 닮은 외모의 그 선배는 내게 같이 공부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아니, 정확히는 새벽에 같이 중앙 도서관에 나가 공부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도서관은 문을 열기 전 서로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경쟁이 있었고, 우리는 그 경쟁에 들어갔다. 제대 후 군기가 한껏 빠져 나태에 흠뻑 취해 있던 나에게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공부는 모르겠고, 일단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작은 것을 실천하자 마음먹었다. 과연 며칠 선배와 동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서서히 배기 시작했다.
둘로 시작한 새벽 도서관 모임은 참가자를 한 명씩 늘렸다. 한겨울 새벽에 맞불어오는 바람이 차곤 했는데, 우리는 한참 유행하는 농구 점퍼를 맞춰서 구입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슬램 덩크 클럽이라고 자칭했다. 나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인 ‘정대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정대만은 중학 최고의 에이스였으나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하다 다시 돌아온 인물이었다. 선배는 그 캐릭터가 내게 잘 어울린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한 모임이었지만, 멤버 저마다의 가슴에는 희망이라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지금도 J 선배에게 감사하고 있다. 기회가 닿으면 더 자주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이면서 그때 나를 이끌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주말에 애들이 조금 늦잠을 자면 일부러 깨운다. 아내는 옆에서 말리지만, 나는 억지로라도 깨운다. 녀석들의 찌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짐짓 흐뭇한 표정으로 외친다.
"이 녀석들아! 해가 중천이다. 어서 일어나!"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어서 일어나 희망을 품으라고, 희망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이뤄진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