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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ug 31. 2022

막존지해(莫存知解)

시간 여행자

오늘 갑자기 오미크론 확진자가 회사에서 발생하는 바람에 내일부터는 다시 재택근무가 시작된다. 새해가 시작되고 조직이 바뀌면서 결원이 생겨 담당 업무의 물리적인 양이 절대적으로 늘었다. 덕분에 1월 들어서는 회사의 수원 연구소로 꾸준히 출근하고 있다. 집이 있는 고양시에서 수원 연구소까지의 출근 시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말이 두 시간이지 KTX를 타면 서울서 대구 가는 시간이다. 왔다 갔다 네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출근하려면 '강제 미라클 모닝'을 실현해야 한다. 5시 반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두 시간 동안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면서 책을 읽기도 했는데, 나이 탓인지 쉽지 않고 힘에 부쳤다. 결국, 요 앞 2 주 동안은 아내가 차를 사용하지 않아서 내가 대신 자차로 출근했다. 자차를 이용해도 출근 시간은 1시간 10분이 걸린다. 그러나 고양시에서 수원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외곽 순환도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극심한 출근길 정체로 유명하다.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건 자차로 출근하건 관계없이 5시 반에 일어나는 기상 시각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내일같이 재택근무라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가 없을 때도, 기상 관성 때문인지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5시 반에 눈이 떠진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뒤척이면서 잠을 청하려 하겠지만, 오늘같이 모처럼 늦은 저녁 시간에 책을 읽다가도 내일 아침 또 그렇게 잠시 일어났다가 선잠이 들어야 하는 걸 생각하면 일찍 자야하나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기상 습관이란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알람이 없어도 벌떡 일어나는지. 나이가 들어가며 새벽잠이 없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잠.. 어느 해인가, 10여 년도 더 전 이야기다. 크리스마스가 걸친 시기에 회사 일로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해외 법인 방문 출장인데, 그 당시에 내가 다니던 회사는 일본에 본사가 있고, 미국, 인도, 유럽의 벨기에, 덴마크에 공장이 있는 회사였다. 우리 사업부만 그랬고, 다른 사업부의 자회사들을 따지면 그 외에도 해외 법인들이 약 200여 개 있었으니 말만 일본 회사지 사실은 다국적 기업이었다. 그때의 출장은 물리적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출장이었다. 우선, 일단은 덴마크로 갔다가 벨기에로 이동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를 들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을 거쳐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10박 12일 출장이었다. 지구를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돌기에 하루가 기중박(機中泊)으로 없어진다. 출장의 힘듦과는 관계없이 그때의 아내의 원망스러운 눈초리란...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런 출장을 갈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잠자는 습관이다. 특히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가면 가도 가도 언제나 낮이다. 도착지에서는 낮이 계속되는 것이다. 근무 시간인 낮이니 현지 스태프와 계속 미팅을 한다. 내 기준으로는 24시간 내내 깨어 있어야 한다. 반대 방향으로 돌면 밤과 낮의 반복이 빨라진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인데, 어느 것이 더 편하냐면, 사실은 낮이 계속되는 것이 출장지가 한 국가에 불과하다면 더 편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이고 무리를 해서 24시간 깨어 있으면 다음 날은 시체가 되니 자연스럽게 시차 적응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유난히 시차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국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시계 추같이 했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 같다.


난 직업상 '자체 시간 여행'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들어가는 원료를 한국 회사에 공급하고 있었는데, 납기 문제로 당일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면, 낮 시간에는 일본 본사의 담당자에게 상황을 확인한다. 오후 4시쯤이 되면 유럽 네덜란드의 영업 담당자에게 고객의 클레임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럼 이 담당자는 재고가 있는 미국의 담당에게 연락을 해야 하기에 항상 밤 11시~1시 사이에 전화가 온다. 급하면 내가 미국의 재고 담당에게 전화를 한다. 그래야 해결이 되어, 다음 날 한국의 고객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나는 24 시간 'Available' 한 상태로 깨어 있어야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고객은 100% 해외 고객이다. 수출 100%인데, 일본 회사에서 한국 회사에 재료를 마케팅하다가 거꾸로 한국 회사에 들어와 일본 회사의 제품을 대체하는 신규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지만, 또 도전해 보고 싶었던 일이라 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로 지난 2년간 해외 출장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조직 변경으로 결원이 생겨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 전 지역을 맡게 되었다.

다시 24 시간 'Available'한 상태가 되어야 되는 때다.


그래서 잠시 공상을 해본다. 기술의 발전으로 A.I.의 수준이 높아져서 언젠가 나의 머리를 스캔하듯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그대로 복제한 아바타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의 나는 쿨쿨 자는 시간 동안에 나의 아바타는 해외 거래선과 미팅을 하고, 협상을 하며, 문제를 해결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A.I.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경험과 논리 사고방식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데이터와 연산의 속도가 기록적으로 빨라져야 할 것이다. 머신 러닝의 수준도 올라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고 논리 체계의 완벽한 분석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무어의 법칙처럼 기하급수적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한해 한해가 다른 요즘인데, 아마 이 지구 어딘가에 이미 나의 생각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천재 과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술이 완성된다고 하면, 나는 자고 있으면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 될 것이다. 모두들 잠자는 시간 여행자??


그러나, 과학의 발전이 유명 무실하게 우리의 뇌에 대한 분석은 그리 녹록지 않다. 민간 우주여행이 가능해진 요즘에도 정작 우리의 뇌에 대한 분석은 아직도 먼 길 같다. 인간의 숨겨진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과학자와 인간의 마음은 없고 단지 뉴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화학 반응의 집합체라고 규정하는 과학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75억 지구인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뇌'도 모른다. 그래서 뇌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아직 그 깊이를 제대로 모르는 인간의 '뇌'는 소우주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심오하고 대단한가!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유일하고도 고유한 우주로써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윤리적인 문제로 들어간다. 그 심오하고 유일한 우주인 우리의 뇌가 기계에 의해 복제된다면? 그 A.I.는 인격체인가 아닌가?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감정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 A.I.를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천재의 뇌가 복제돼서 수 십만의 천재의 뇌를 복제한다면 그것은 지구의 축복일까 재앙일까. 반대로, 히틀러 같은 전쟁광이자 살인광의 뇌가 복제된다면, 우리는 곧 망할 것인가. 잠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뇌의 복제로 갔다가 다시 뇌 복제에 대한 윤리적 문제까지. 참 못 말리는 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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