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부모가 줄 수 있는 진정한 선물

by 구일영

나는 음악을 꽤 좋아한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음악에 대해 소위 감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 감은 오랜 세월 한 가지를 섭렵한 후에나 완성된다. 잡다하게 여러 가지 장르를 읽는 나의 독서 습관과 같이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외국 음악 듣기는 어머니가 주신 마이클 잭슨 카세트테이프로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라디오와 테이프만 들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있었다. 나는 주로 만화 영화 주제곡 카세트를 듣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하곤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처음으로 선물을 주신 것이 마이클 잭슨의 테이프였던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무조건적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조건부 사랑이라 규정했다. 모성의 위대함은 자식이 좋아하는 것에 맹목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 가사를 알리 없는 어머니는, 아들이 팝송을 좋아한다는 것에 선뜻 지갑을 여셨던 게 분명하다. 어머니에게 중요했던 것은 가사의 내용이 아니었다. 어머니 덕분에 나는 그 당시 최신 유행하던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앨범에 수록된 <비트 잇(Beat It)>과 <빌리 진(Billie Jean)>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기억에 남는 인생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 난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팝송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학교에서는 공부로 그다지 특별히 튀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음악과 영어에 관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아이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선물한 그 테이프는 외국 음악을 섭렵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용돈이 생기면 오락실로 달려가던 또래 친구들과 달리, 난 카세트테이프와 LP 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의 팝송 사랑은 마니아 급으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무렵에는 학교 방송반 아이들 중 나랑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선곡을 해달라며 내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팝송 덕분에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일찍 싹텄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어 듣기 평가 성적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은 듣기 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내 실력을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전 학년에 듣기 평가 만점 받은 애가 누구냐고 다른 반 모범생들이 조용히 우리 반 친구들한테 물어보기도 했을 정도다. 아마도, 모범생들은 그전부터 경쟁 상대로 생각해 서로서로 알고 있었는데, 영어 듣기 평가 만점 받은 친구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아이였으니 놀랐을 것이다. 특별히 뭘 한 것은 없지만, 팝송을 들으며 단어를 찾아 공부했던 것이 주요했던 것 같았다. 그런 나의 팝송 사랑은 영어와 스페인어 공부로 확장되는 자양분이 됐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내 차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당연히 차에서 들을 음악 CD를 굽는 것이었다. 아내를 태우고 다니며 차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도 특별했다. 아내는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아는 남자는 처음 본다고 놀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왜 그딴 걸 듣냐는 핀잔을 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안 그랬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음악 대열에 동참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듣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동요나 애니메이션을 우선적으로 들려줬던 것 같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들려달라고 떼를 썼던 적이 있다. 내가 듣기에는 조잡한 록 음악 같아서 그런 것은 음악이 아니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다소 의아해하며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진짜 음악이냐고 물었다. 난 그때 80년대 헤비메탈을 들려줬다. 녀석들은 한 번에 그 음악에 빠져들었다. 마치 끝도 없는 지평선의 저 너머를 조우(遭遇)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특별히 계속 들려달라고 졸랐던 것은 본 조비의 노래였다. 시대에 맞지 않은 80년대 팝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 아이들에게 전수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이들 차를 타면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틀어달라고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큰애가 중학교 때 일이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친 큰애를 학교 앞에서 픽업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큰애의 얼굴이 유난히 시무룩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아이들이 왜 너는 모르는 노래만 듣냐며 놀렸다고 했다. 남들하고 좀 다르면 놀림을 당하는 세태가 된 것이 아쉬웠다. 그럼 친구들 듣는 걸로 같이 들어주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친구들이 듣는 건 음악이 아니란 이야기를 했다.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걸그룹 음악에 식상했던 듯싶었다.


출중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 실력으로 고교 밴드부에 가입했던 둘째의 경우는 더했다. 연주 연습을 하다가 선배들이 추천했던 노래가 지겨웠던 둘째는 헤비메탈을 연주하자고 제안했다가 괜히 야단만 들었다고 했다. 그 선배들의 대답은 헤비메탈은 악마의 노래라고 안된다고 했다나? 둘째는 기독교 재단인 학교의 지침도 고려하여, 그럼 가스펠 메탈 그룹인 스트라이퍼(Stryper)의 노래를 듣자고 제안도 했단다. 물론, 이상한 음악만 듣는 둘째의 제안은 무참히 깨졌고, 녀석은 밴드부를 탈퇴했다. 애들이 누굴 닮아서 이러는 것인지.


나와 같이 헤비메탈에 심취했던 두 아들이 군대에 갔었을 때, 마침 아들들은 가족병 제도를 활용해 같은 부대에 있었다. 녀석들을 만나러 면회를 갔었을 때 자연스럽게 내무반 생활은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런저런 선임들이 너무하다며 힘든 이야기를 뱉어 내곤 했다. 주로 자신들은 정당하지만, 부당한 처우나 자신의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불끈하고 일관적으로 자신의 임무에 대해 지켜 나가려는 아이들의 심지(心志) 굳은 생각들이 읽혔다. 물론 억울한 것은 있겠지만, 약간은 고지식하게도 느껴졌던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면회를 끝마치고 부대를 나오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한 나머지 아내가 보지 못하게 한 손으로 가렸다. 왜 눈물이 나왔을까? 아마도 그건 애들이 내 생각과 똑 닮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울음이 나왔지 싶다. 아이들이 나를 닮았구나. 나를 닮았어.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의 참뜻을 나는 그날 몸서리치게 느꼈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서 그 인연으로 같은 공간 속에 같은 생각을 배양하며 살아가는 일 자체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사실 몰랐다.


그 옛날 어머니가 주신 테이프 한 장이 내가 헤비메탈에 심취하는 계기가 되었듯, 내가 차에서 들려줬던 80~90년대 음악들은 아이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진정한 선물은 부모가 물려주는 정신적 자산이다. 부모의 생각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특별하게 취급되고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자산으로 각인된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소중한 자산을 우리는 하나씩 마음에 품고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똑바로 살아야 한다. 지금의 내 행동이 누군가 후대에 자식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거울처럼 전달될 운명이니까.

이전 20화20. 죽음 앞에 당당하기 위한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