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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Dec 22. 2019

어려운 연애

10월 즈음이었나. 모임이 있었다. 모임의 특성상 남녀가 한껏 어우러져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개중에 눈이 맞는 누군가는 따로 연락처를 교환하기도 하고, 갑자기 어느 순간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사교모임이 한두 번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부지런히 모임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하고 있어야 되는 건가.’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혼자 있을 때뿐만이 아니고, 커플일 때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내 마음의 허전함은 내 짝꿍만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금 말하자면, 정확히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감정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은 내 짝꿍이 아닐 수도 있다.


늘, 처음 보는 누군가와 똑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고, 그중 눈이 맞는 누군가와 식사를 하고, 또 만나게 되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고. 내가 지난 3년간 이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모든 게 허무해지는 것이었다. ‘이러다 죽을 때까지 이 재미없는 짓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이 사교 신에 환멸을 느끼는 순간, 이제 내가 어떤 매력적인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루트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된 것과 다름없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안다. 뭔가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그것을 하는 것에 열정을 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변한 나에게 누군가 자발적으로 다가와준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책만 보다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한창 당구에 재미를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재미를 느끼고 새롭게 느끼면 정말로 열심히 한다. 그래서 열심히 했더니 좋은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 없이 당구라는 행위 자체에 싫증을 느끼게 되니, 갑자기 잘 나오던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냥, 이전의 반도 점수가 안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연애도 그렇게 될까 봐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혹시라도 연애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어보아서 더 이상 시도를 하지 않을까 봐. 더 이상 연애는 내게 새로운 어떤 것도 주지 못할까 봐.


그러면, 연애가 재미없으면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서있으면 외롭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법이고, 나 또한 그런 인간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아니 오히려 전형적인 그런 인간형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정감을 원하면서도 그 안정감에 도달하기 위해 해야 하는 루틴을 견디지 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이 사실 엄청나게 당혹스럽기도 하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포도밭에서 포도가 절로 땅에 떨어지길 원하는 이솝우화의 어리석은 여우처럼.


어떤…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이전처럼 또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은 이제 버려야 하는 걸까.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도, 냉정해지는 내 자신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 걸까. 나이 들고 생각이 섹시해지면 모든 것이 쉬이 풀릴 줄 알았건만, 세상이라는 놈은 그리 쉽게 내 인생을 풀게 놔두질 않는다. 그래서 악독하다. 웃기기도 하고. 내 연애사의 적이 ‘하고 싶지 않음’ 이라니.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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