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자 있는 사람은 결코 건들지 않는다. 일부일처제라는 사회 시스템에 격하게 공감하거나,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는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카르마'를 믿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이미 경험이 있다. 나도 모른 채 '임자 있는' 그 사람에게 빠져들어갔고, 나는 그녀의 남자로부터 그녀를 뺏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몇 달간의 노력 끝에 결국은 성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너무 무리했던 걸까. 사이는 이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성을 거치지 않은 감정이 앞선 관계는 이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갈등과 싸움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한 타는 이때 즈음에 나왔다. 나는 어찌 됐건 우리는 서로가 원해서 만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던진 것이다. '너가 꼬셔서 그런 거잖아' (나는 너만 안 꼬셨으면 지금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는데). 나는 이 한마디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 감내하고 있는 이 고통의 책임이 오로지 나에게 덮어씌워지고 있다는 강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순간 밸런스의 큰 축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녀 입장에서 나는 오로지 '가해자'였던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함께 위험한 모험을 한 것이 아니고, 나만의 이기심으로 인해 그녀를 lure 한 셈이 되었던 것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곧 이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짧은 일탈은 두 어린 청년의 불쏘시개 장난 같은 에피소드가 되고 말았다. (감정의 상처가 치유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하지만 감정의 책임,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남의 무언가로 인해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 그것은 내게 상당히 큰 울림을 주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회피한 그 느낌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감정이 배제된 채 덤덤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지만, 이것이 내가 임자 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관계는 늘 부침이 있다. 크게 상승 국면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하지만, 이내 하강 시점이 오면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누군가와 비슷한 관계를 맺는다면 또다시 관계의 큰 하강 시점에 동일한 이유로 상대방이 나를 원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것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