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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Apr 30. 2017

시간의 길고 짧음

어느덧 연휴가 시작되고 하루하루 지금 현재 가장 내게 풍족한 자원인 ‘시간’을 물쓰듯 쓰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아직도 며칠이나 휴일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여유로울 수가 없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가정을 해보건대 지난 일주일간의 노동 끝에 주어진 휴일이 단 하루라면 그 하루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고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도 피어나고 꼭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것이고.


이번 같은 경우는 많이 다르다. 사람도 마음 편히 만나고 집에서 책도 읽고 산책도 여유롭게 하는 등 일정 사이에 buffer를 많이 주어 정신적인 여유로움이 생긴다.


늘 촉박한 일정 속에 사는 삶에선 삶의 진정한 기쁨도 또 창조력도 말살된다. 머릿속에 여유가 없으니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하루하루는 너무나 빨리 가는데 나는 오히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괜히 야근 중독, 일 중독이란 말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중독의 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 사람이 휴식과 일이 선순환(work life balance)되어야지 동반 상승효과를 통해 일과 삶의 퍼포먼스가 높아지는 법인데, 한쪽의 균형이 깨지면 이는 결국 ‘후불제 삶’을 사는 것과 같게 되는 셈이 된다. 결국 언젠가 갚아야 되는 삶의 ‘부채’를 떠안고 사는 것이다. 이는 곧 미래의 어느 순간에 신체적 질환이나 정신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그 이전 증상으로 몸에서 어떠한 휴식을 원하는 신호를 보내오기도 한다. 이제 막 자수성가한 중견기업의 CEO가 갑작스러운 신체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하는 일은 부채가 쌓일 대로 쌓여 이제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서 신체가 보내오는 이른바 최후 ‘통첩’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항상 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의외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심플해진다. 인간에게는 여러 고뇌가 있지만 고뇌의 한축을 담당하는 것은 항상 무의식적으로 ‘내일’을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고뇌이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참고 견딘다는 관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인데, 이는 신체, 정신적으로 모두 좋지 않다. 부채는 결국 언젠가 값아야 할 빚이고, 빚을 내어가며 얻은 과실을 맛보기도 전에 빚이 본인을 잠식해버린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주지할 점은 그런 ‘후불제 삶’에서의 성취 끝에 나온 과실은 내가 과거에 막연히 생각했던 과실과는 맛도, 색도, 전체적인 형태도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목표, 목적을 달성하면 나는 이렇게 행복하겠지라는 것도 결국은 허울이다. 덧붙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면, 목적에 도달해서도 또 다른 목적이 생겨나고 결국은 또다시 미래의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젠간 이 불완전한 순환의 고리를 멈춰야 한다. 난 그래서 멈췄다. 오늘을 희생하는 일에 더 이상 몸과 마음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present)은 선물이지 희생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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