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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Apr 08. 2017

삶의 풍경이 변화할 때, 난

직장은 판교, 집은 분당, 분명히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인데, 요사이 삶의 풍경이 참 많이도 변화했다. 이제 더 이상 판교의 빌딩 숲, 분당의 여수천이 낯설지가 않다. 혼자 사는 삶도 제법 익숙해졌다.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는 내가 자연스럽다. 결국 주어진 환경에 늘 항상 언제나 그래 왔듯 적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기보다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점도 신선하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걸까. 나이가 만으로 서른이 되니 예전에 어렵게 했던 것들을 곧잘 쉽게 하곤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거나,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거나 하는 것들. 예전에 대단해 보이던 것들은 이제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와서인지 더 이상 어렵거나 대단하거나 크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분야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물음표다. 늘 앞에 숙제는 존재한다. 누가 딱히 정답을 내려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했을 때 원칙에 가까운 답을 찾아내려고 늘 노력한다. 그렇다고 딱히 그것이 최선의 결정이라고 합리화하지도 않는다. 그냥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고, 주어진 시간은 짧고 내 경험도 비천하니, 그에 맞는 의사결정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어른이라는 존재도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살아온 세월과 경험, 지식, 지혜 모든 삶 그 자체는 사실상 그리 길지 않다. 요새 한해 한 해가 참 빨리도 느껴지는데 그런 한 해 한 해를 딱 50번만 하면 나이가 50이다. 예전 같으면 이제 사회의 원로가 되었을 나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내 삶은 여전히 물음표일 것 같다. 아니면 이미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역시 무언가 노련해진 점은 있다. 분명히 삶의 시야가 넓어진 것은 느껴진다. 예전에 못 견디던 것들도 나름 견딜만하다. 부정적인 상황이 해결된다고 인생의 본질적인 숙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어쩌면 삶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삶의 부정적인 측면들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제 그러한 부정성을 억지로 극복하고 싶지도 않다.


책을 본다고 딱히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강연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인생의 숙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경험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좋은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 것,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좋은 책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했다. 삶에 더 거대한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니 그러한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이제는 마음으로 느낀다.


따뜻한 코코아 한잔 마시며, 붉은 조명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수단이 아닌 존재와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제 알겠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은 그 자체로 완성이다. 오늘 땀 흘리며 운동하고 들어와서 무한한 침묵의 시간에 글을 쓰며 마음의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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