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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Jun 24. 2017

일은 빨리하는 것이 아니고 ‘정확히’하는 것이다.

나는 브런치에 인기 있는 작가들처럼 경력이 10년, 15년씩 되지도 않았고, 사실 사회 내에서는 아직도 ‘주니어’ 레벨로 구분되는 기획자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다양한 직군의 사람을 만나다 보니 경력과 진짜 실력의 관계는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다시 말하면, 경력이 많으면 그만큼 실력이 많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꼭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정리할 수 있다.


나는 나이는 많지 않지만 지금 7번째 직장을 경험하고 있다. 해본 일은 영업, 기획, 일반 스태프(오퍼레이션 잡), 콜센터 직원 등 한 가지 직군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본 편인데, 다양한 일,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물론 다 합쳐도 10년씩 되지는 않는다.) 내린 결론은 일은 빠르게 보단 ‘정확하게’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단편적인 지식, 짧은 지식을 갖고 쉽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떠한 일을 추진할 때, 주변의 얘기만 듣고, 조금 생각하고 나서 아니면 바로 의사결정을 해 버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화 통화 몇 번 해보고 아 그럼 이런 일은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겠네요. 아니면, 아 이런 일들은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든지.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게 되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1.    일의 진행상황이 도중에 뒤바뀌게 된다. 모든 일은 현재 상황 파악-자료 수집-올바른 가설 설정-검증-최종 결론 도출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충분한 숙고 없이 일을 바로 처리해버리게 되면, 현재 우리 회사의 상황, 앞으로 나아갈 방향, 우리의 인력, 리소스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기획이 되어, 결국에는 프로젝트의 일부분, 혹은 상당 부분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꼭’ 발생한다. 결국 처음에 잘 다져놓았으면 스무드하게 흘러갈 ‘수’ 있었던 일을 2~3배의 시간을 더 투여해서 해야 되는 그리고 퀄리티도 더 높다고 말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2.    주변의 신뢰를 잃게 된다.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의 1차 고객은 바로 우리 팀, 우리 회사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원들이 일의 추진방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일의 진척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내가 봐도 세상에 통할 것 같지 않은 서비스를 기획하라고 하면, 힘이 빠지고 기계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결국 어떠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내부 구성원들을 ‘설득’ 하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이용하는 것이 ‘생각의 힘’이다. 이를 테면 내가 이번에 이러한 일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리서치 조사 과정과 현장 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게 상당히 우리의 컨셉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제약 조건이 있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나는 제약 조건을 피하고 목표에 부합하는 일 처리를 위해 먼저 ㅇㅇ을 하고 ㅇㅇ을 하는 식으로 일 진행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이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것이 잘 진행되고 나서 마일스톤은 이렇게 구성해서 일을 처리하자. 뭐 이런 식으로 충분히 팀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논리(물론 논리만으로 일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를갖추어야지 팀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그것이 아니고, 주변의 말 조금 듣고, 인터넷 검색 조금 해보고, 자신의 생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행동으로 옮기자고 하는 경우 당연히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 (흔히 블라인드나 잡플래닛에 나오는 회사 후기 중, 우리 회사는 체계가 없구요. 경영진들의 판단으로 프로젝트가 자주 뒤집어진다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위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일을 정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현재 상황 파악: 현재 우리 서비스가 어떤 기능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을 좀 더 고객 편의적인 방법으로 개선을 하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우리 서비스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고객이 처음 우리 서비스를 만나는 접점부터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문서로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문이 가는 점들은 실무 담당자들에게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파악하여 적어도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2.    리서치: 서비스 개념에 대해서 스터디를 한다. 예를 들어 PG 결제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PG는 무엇인지, PG와 VAN은 무엇이 다른지 등, 그 시스템 자체와 그 시스템에서 파생되는 개념들에 대해서 구글링을 통해 충분히 리서치를 하여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구글링을 통해 충분히 양질의 자료를 많이 찾을 수 있다. 네이버 안녕……)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하고 있는 서비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 등에 전화를 해서 그쪽 회사에서 해당 고객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루틴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보통 나의 경우에는 서비스 이용자로 가정을 해서 전화를 한다. 내가 이 서비스에 관심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근데 내가 조사를 해보니 이런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여기서는 어떻게 해결해주느냐하고 묻는다. 대게는 친절하게 응대해주는데, 뭔가 불친절한 경우는 더 얘기하지 않고 끊으면 된다. 이렇게 타사에 고객인 체 전화하는 것이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업계에서 공통된 룰은 어떤 것을 따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니면 우리도 준수해야 하는 건지, 몇 년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을 가지려면 전화 인터뷰 말고 적절한 수단이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으면 아예 미팅을 잡고 직접 타사로 찾아가서 담당자를 만나기도 한다. (사실 굉장히 미안한 일이다. 근데 적절한 대안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다만 리서치는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 서비스 개념 파악, 현재 시장 동향 파악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점을 잡고 너무 리서치 기간이 길어지면 현재까지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제 개선안을 도출하면 된다. 즉, 지금까지는 ‘발산’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수렴’의 영역인 것이다.


3.    정리 및 개선안 도출: 나의 경우에는 리서치 단계에서 일단 조사한 내용들을 순서 및 논리의 흐름과 상관없이 일단 메모장에 쭉 적어놓는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취할 사실 혹은 개념들을 선택하여 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이렇고, 조사를 통해 이런 개념과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며, 현재 우리의 리소스와 방향, 그리고 업계 현황을 고려했을 때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이러한 과정은 아무리 빠른 일처리가 요구되는 스타트업이라도 필수적으로 해야 되는 상황이다. 거대한 코끼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거대한 코끼리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과정을 리서치라고 한다면, 코끼리의 ‘코’만 본 사람과 코끼리의 ‘실루엣’까지는 파악한 사람의 개선안 도출은 당연히 그 방향에서도 정확도 면에서도 천지차이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세상의 모든 자료를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리서치 마무리 시점을 정해야 하는 것은 필수이다. 하다못해 알파고도 모든 경우에 수를 다 검토하고 수를 놓지는 않는다. 


현재 상황 파악-리서치-정리 및 개선안 도출은 사실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일처리는 우선적으로 1차 고객인 우리를 설득할 수 없으며, 당연히 시장에서도 실패한 제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이지만, 주변에서 일을 너무 안일하게 대충 처리하는 사람들을 계속 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당연한 것을 적절한 논리와 감성을 갖고 반복적으로 해내는 것이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의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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