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렵고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다가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이제 그것이 점점 쉽게 느껴지는데,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연애를 하든 간에 처음의 어려운 단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것이 점차 익숙해짐과 동시에 쉽게 느껴지게 되고 어느 순간 되면 숙련된 ‘전문가’의 단계에 이를 것만 같은 자신감도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상당 시간이 흘러가면 사실은 그것을 잘한다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점차 깨우치게 된다. 나는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파면 팔 수록 오히려 아리송하고 잘 모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가 - 아마 전 세계에서 그보다 글을 잘 쓴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정도의 거장이었다. - 하루 종일 글쓰기에 매진을 해도 겨우 다섯 단어밖에 쓸 수 없었다는 사실이 절대 우스갯소리로 넘어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이제 모든 것의 진짜 시작은 제대로 된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라는 것을 안다. 내가 어느 정도를 할 수 있고 또 어떤 것을 ‘모르며’ 그것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때, 그리고 그 노력이 절대 단기간에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또한 겸손해진다. 흔히들 쓰는 말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이는 내가 잘났음을 알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굳이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모르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모습을 띄게 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모든 분야가 (예술이나 스포츠 쪽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종사하는 정보 산업 분야는 더더욱) 계속해서 끊임없이 발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1~2년만 업계에서 떠나도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점점 멀어지는 산업의 뒤꽁무니만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그리 기죽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안심해도 되는 점은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함에 따라 ‘자동화’ 성능도 몰라보게 좋아져서 이른바 메뉴얼잡의 비중을 줄여주고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창조적’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 토대가 잘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스케치라는 디자인 툴로 UI작업을 빠르고 편리하게 하고 나서 제플린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여 디자인 가이드를 자동으로 만들 수 있으니 그 남는 시간에 새로운 창의적인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날로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일반인들도 이제 평생을 공부에 매진해야 되는 시대는 왔지만, 그 기술 본연의 수혜를 적절히 이해하고 본인만의 killing point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여전히 생존의 기회는 도처에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