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

3-2 비 온 뒤

by 다듬

다음날 다행히 비가 그쳤다.

우리 집을 향하여 검은 물을 콸콸콸 휘둘렀던 집도 고르게 모두 잠겼다.

시간차였을 뿐, 모든 지하가 잠겼다.


전쟁통이라면 그런 풍경일까,

온갖 살림들이 태양 아래로 모셔져 나왔다.

골목은 금세 북적거렸다.

한 권 한 권 의미 있는 책들이 수해로 인하여

한데 엉겨 붙었고,

음반이며 노트북, 모두 사망이었다.

말려서 살릴 수 있는 류는 고작 부엌살림 정도가 전부다.


뻔한 자취 살림은 뒤틀리고 갈라졌고,

다 말랐겠지 믿었던 벽지는 붙이면 다시 곰팡이

또 붙이면 다시 곰팡이, 수몰은 강력했다.

고질병이었던 비염이 그들에게 당해서

난 진짜 전쟁통 아이들처럼 코찔찔이가 되었다.


비는 그쳤다.

그가 낸 생채기는 내내 우리를 쥐고 흔들었다.

아빠가 목돈을 주셔서 두 계단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방을 보러 온다고 하면 풀질을 하고

곰팡이를 막았다.

이렇게 계속하다가 내 한 몸 누일 공간도 없어지게 두꺼운 벽이 되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이제 막 상경한 두 청년이 나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투룸 세발 지하를 의기 있게 계약했다.

차마 그들에게 잠긴 방이라고 솔직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다.

주인아줌마가 대충 얼버무리는 말소리를 외면했다.

나는 내내 그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내 방에 쓰던 쓰레기봉투와 책 한 권을 두고 얼른 도망쳐 나왔다.

부디 그런 물난리는 매번 나지는 말기를 바랐다.

다행히 향후 5년간 그 동네는 물난리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빗방울이 투둑 투둑 큰소리를 내면,

아직도 어딘가에는 지하에 사는 이들이 있을 텐데 걱정이 된다.

잠긴 자는 잠겨본 자는 안다.

그 공포와 심란한 마음을... 말린 짐을 도로 가지고 들어가서 습한 기운을 느낄 때의 참담함이라니.


서울에서 나는 생존을 배웠다.

늘 저리 가,라고 협박하듯 매서웠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가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또 어떤 방이 나를 환영하게 될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