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스카이웨이
오토바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렇듯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고요를 맞이하고 있었다.
부조리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미 그렇게 굳어진 사회였다.
혁명은 불가능했다.
혁명을 시도할 만큼 재기 발랄한 자는 아니었다.
여행을 떠올리고 자유롭게 질주하던 시기를 생각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오토바이를 구매했다.
씩씩한 헬맷을 구매하였고, 척추를 보호할 수 있는 재킷을, 무릎과 엉덩이를 지켜줄 바지를 사야 했다.
둘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장비를 사서 장착하였고, 씩씩한 헬맷과 더불어 간단한 라이딩을 위한 헬맷도 요구되었다. 여름까지 대비하여 태양을 최대한 피할 팔토시와 발토시가 필요했다.
구매는 다른 구매를 끝없이 부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했다. 늘 이게 마지막, 이라고 외치지만 결국은 또 뭔가 필요를 만들어 내고 소비를 하고야 말았던 당신을 간과한 건지도 모른다. 그제야 출동이었다.
2
북악스카이웨이,
구불구불한 길
걸어서 올라간 적 있으며 차를 가지고 가보려고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 밀린 주차를 보며 낙담하여 되돌아간 적도 있었다.
맨몸으로 시속 100Km를 맞이하는 일은, 짜릿하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품은 쾌,를 느낄 수 있다.
속도를 느끼는 그 순간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눈을 감기도 한다.
차들이 꽉꽉 채워 자기들끼리 다툼하는 동안 몸집이 작은 우리는 유유히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
사대문 안에서 속도라니, 커다란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오토바이들... 단거리 주자들 같다.
으르렁 거리는 화난 경 주견들과도 비슷한 풍경이다.
오토바이는 차에 비하여 반응이 빠르기에 가능하면 신호대기는 가장 앞에서 하는 편이 유리하다.
절반 이상은 배달족들이지만 노인, 청소년, 철없는 우리 같은 중년도 의외로 많다.
북악 스카이웨이는 묘하다.
종로 쪽을 바라보면 미래도시처럼 끝없이 반짝이는 조명과 빌딩과 시각적으로도 시끌시끌한 도시 풍경인데
반대방향으로 돌아서면 고즈넉하면서 고풍스러운 동네들이 고요하게 저녁을 맞이하며 새들 울음소리가 청아하다.
상반되는 풍경과 소리와 조도와 분위기는 여기에 올랐을 때 느낄 수 있는 최고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바이크족들을 위한 주차시설이 화장실 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충분히 편리하고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다.
물론 그 감동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금요일 저녁 시내는 지옥이다.
무거운 나를 뒤에 매달고는 배달족들처럼 요리조리 위험을 감수할 만큼 빠른 속도를 기대할 수는 없기에
야, 후딱 집으로! 를 외치는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