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추억팔이

어쩌면 너는 기억조차 못하겠다만

by 다듬

이제,

당신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네요.

사람도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 희미해지고 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어떤 날에는 내게 주었던 책을 발견하고는

당신을 떠올려봤어요.

그래서 박완서는 어떤 주인공의 입을 빌어

물건을 선물로 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결심을 하더라구요.

뭐든 물건으로 남아서 기억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라져야 하는 것들을 사라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그렇지요.

사람에 대한 기억 역시 그렇게 무뎌지고 사라지고 하는 일이 어쩌면 훨씬 자연스러워요.

물건은 자동연필깎기처럼 요사스럽게 당신에 대한 기억을 한꺼번에 소환했어요.

기형도가 살았다는 집을 찾아가던 날이 떠올랐어요.

바람에 세차게 펄럭거리던 까만비닐로 쌓인 그 집,

더 이상은 가까이 가지 말자고 둘이 나누었던 이야기도,

졸랑졸랑 쫓아오다가 그에게 허락된 길이 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돌아서던 검정개도,

시커먼 구름이 천변까지 무겁게 드리워져 있던 그 날의 하늘도,

선명하게 튀어나오고야 말았어요.


모르긴 해도 가끔은 다시 그리워질지도 몰라요.

늙어가면서 그런 순간들 몇 개쯤의 기억 어딘가에 두고 있어도 괜찮을 거예요.

설령 당신은 나를 영영 다시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래도 상관없어요.

이기적이지만, 그 기억은 나만이 소유할 수 있으니까요.


#기형도는가도#정확히기억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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