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발견

자가격리4

by 다듬

나는 분명히 젖은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아직도 그 책을 가지고 있기에 어디에 있나 예술분야 책들이 꽂힌 책꽂이를 탐색하다가 2017년 업무 다이어리를 발견한다. 그때 만나던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봉사로 만났던 아이들이 얼마나 컸을지를 가늠하며 웃음이 터졌다.

젖은 책은 곰브리치였으니 전부 아트지였었지... 종이에도 종류가 다양한가, 궁금증이 들어서 백과사전에서 종이를 찾아서 읽는다. 종이와 연필을 퍽이나 사들였던 지난 날들 덕분에 여기저기 연필꽂이에 가득한 필기구들 중 하나를 빼서 윤동주를 필사했다.


아, 나는 곰브리치를 찾고 있었나 아니지 곰브리치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지.

곰브리치가 아니고 젖은 곰브리치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오늘 화분에 물을 줬나. 빨래를 개켜야겠다. 수건이 보송보송하니 잘 말랐다. 건조대가 있는 나무 바닥을 닦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두꺼운 수건으로 벅벅 닦아낸다. 먼지란 참으로 공평하게 내려앉는 존재다.

체온 측정은 하루에 두 번 12시간 간격으로 해야 한다. 오늘은 꼭 기타를 꺼내어 한번쯤 안아는 봐야지.

해가 반짝거리는 날이구나.


젖었던 책들 대부분은 버려졌다. 아니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곰브리치를 못 버렸을까를 기억 속에서 헤집어 본다.

수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릴 적에 사모은 책들은 다들 각자의 사연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촌스럽게도 나는 이렇게 많은 책들을 끌어안고 사는 가보다.


다시 스페인에 갈 수는 없어도 다시 스페인어를 할 수는 있으니까 스페인어를 공부한다.

No abla espanol 이 한마디를 외우고 떠났던 첫 여행이 떠오른다.


나는 분명히 성인 ADHD가 분명하다.

책상을 봐도 그렇고 책을 봐도 그렇고 내 행동 패턴을 봐도 명백하다.

그나마 이렇게 자기 밥벌이를 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음에 다시금 고마웁다.

그렇게 40분 동안 아이들과 눈 맞춤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집중력이면 충분하다.


시간이 많아지니까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모든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젖은 책에 대한 짧은 글을 마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뭐 어떠냐... 아직도 긴긴 하루들이 남아있다.


#배고프다밥먹을까냉장고를파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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