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에 버려지다

버스정류장, 이름이 아닌 번호를 확인하라

by 다듬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속보였다.

흘깃 공항 모니터에 비치는 비행취소알림을 보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였다.

27분이라니...바람이 제법 거칠어지고 있던 퇴근시간, 사람들도 없이 한산하였다.

막 버스가 떠난 탓이었다.

일산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앉을 자리도 있었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행정구역상 동일한 곳으로 내 몸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만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버스가 가는 길을 보니 분명히 우리집 옆을 스쳐지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능곡화원, 분명히 지나다가 본 적이 있는 버스정류장명이었다.

그래, 거기다.

이미 시골밤은 어둠이 집어삼켰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버스정류장, 내리고 난 후에야 뭔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가로등은 멀리서 약하게 켜진 상태였고 인도는 아예 없었다.

LED등이 켜져 있었던 화원들은 모두 밤이 되자 무덤처럼 잠들어버린 듯이 영업을 마친 상태였다. 바람은 거칠게 불어왔고 퇴근하는 차량들은 창을 열고 손을 내밀면 나를 잡을 듯이 가까웠다. 하필이면 치마를 입은 데다 샌들을 선택한 아침이 원망스러웠다.

태풍은 지금쯤 육지로 들어섰을까...바람이 한번씩 거칠어 질때마다 몸을 때리며 적시는 비가 슬슬 무서워질 때쯤 나는 교통표지판을 의지하여 무조건 전철역방향을 향하여 걸었다.

차들은 횡단보도와 신호등 쯤은 가볍게 무시했다. 도로는 움푹 패인 곳이 많아 질주하는 차량들이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쳐갈 때마다 내 치마를 점점 무겁게 만들었다.


1킬로쯤 걸어서 동일한 이름의 다른 버스정류장에 도달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들이 좌르르 와주셨다.

기진맥진, 몸은 만신창이였다.

생각해보니 버스에서 내려 헤매다가 지도를 찾아서 버스를 탈 때까지 나는 사람을 한명도 만날 수 없었다.

시골과 숲, 밤은 빨리 내리고 인적은 드물다.

문득, 한쪽은 철망 혹은 우거진 나무에 한쪽은 차들이 서둘러 휙휙 지나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았다.

범죄가 준비된 듯한 공간적 배경이었음을 잠이 들 때쯤에야 인정한다.


고요와 한적한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낯설은 공간은 공포를 만들어낸다.

경기도민들이여, 복잡한 버스와 기다림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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