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놓쳤다

by 다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나.

매년 반복되지만 해가 바뀐다고 해서 나 빼고 어떤 이들이 하늘로 끌어올려지거나

땅이 무너지거나 내 나라를 누가 침공하거나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은 없었다.

그저 고요하게 벌써 열흘이 넘는 2022년이 도도하게 흘러갈 뿐이다.

오전에는 아빠를 뵙고 조카의 국어학습을 검토한다.

오후에는 밥벌이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고등학생이 되어 키가 170이 넘는 녀석이 내 방에서 오줌을 누는 사건이 1회 있었고,

도통 입을 열지 않던 녀석이 자음을 제외한 온갖 말들을 시도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3차 부스터샷을 맞았고

갑질을 당하는 누군가를 대변하였다가 어리석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별 일없지만 늘 뭔가는 벌어진다.

흥미진진할 필요까지야 있으랴.

녀석이 어린왕자와 여우의 뒷모습 색칠공부를 훌륭하게 해냈고,

군산에 다시 가서 흑백사진을 또 찍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마스크를 깜빡하였다고 자신을 책망하는 노인에게

마스크를 하나 건네드렸고,

황순원전집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맨날 아, 벌써 이렇게 시간이 도망가버렸다고

자책하지 말자.

한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라고 왜 아무일도 없었겠느냐고 훗날 떠올렸었다.

천장과 벽을 두른 종이들을 바라보았었고, 그 무늬와 대면하였으며

이 무위가 얼마나 평화롭고 다행인가를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거렸으리라.

박차고 나설 문이 있고 나를 반길 단 한명이라도 사람이 있고

또 사람 좀 없으면 어떠냐, 땅과 하늘과 나무와 미세먼지가 있었다.


간명한 삶, 살거나 죽겠지.

나는 이렇게 올해도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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