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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회계사 Dec 15. 2018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단기선교 간증문

<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

 

1. 선교는 언제 하나요?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님들은 무엇을 할까?’ 이것은 나의 짧은 신앙생활 동안 가졌던 궁금증이었습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올해 단기선교가 없어서 청주상당교회에 출석하는 동생에게 부탁을 하여 끼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대한 교육도 받아본 적이 없어 선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였습니다. 집 짓기 사역한다는 것이 내가 아는 선교의 전부였습니다. “베트남 땅에 발을 내리면 김덕규 선교사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라는 이종훈 장로님의 말씀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땅에 도착했을 때 김덕규 선교사님의 말씀과 행동에 집중하였습니다. 베트남 쌀 국수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선교사님은 ‘전쟁기념관’으로 우리를 안내하였습니다. 단기선교에 함께 오고 싶어 했는데 나도 끼어가는 처지라 데려오지 못한 성도가 한국에서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전쟁기념관? 선교는 언제 해요?” “글쎄요” 나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선교사님은 버스 안에서 또 경건회 시간에 선교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선교는 상호이해를 하고 존중이 있고서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해를 해야 하는데 나는 베트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베트남 하면 월남전쟁밖에 떠오르지 않고 영화를 통해 접했던 사이공(현,호치민)은 좋은 이미지가 아니어서 베트남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님은 베트남 전쟁기념관에서 수많은 미국군들 사이에서 한국군 사진 2장을 찾는 과제를 냈습니다. 어렵게 찾은 사진 속에서 한국군은 민간인 집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한국 군인들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들을 베트남에 파병하였고 또 잔인하기로 소문났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한국군인을 자랑스러워했지만 나는 베트남 입장에서 생각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현재 베트남은 공산주의 월맹(북쪽)이 자유 민주주의 월남(남쪽)을 패망시켜 통일된 나라이므로 월남에 속했던 미국이나 한국, 그리고 기독교에 반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베트남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복음 전파는 불가능 할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님은 신학생들이 단기선교를 왔었는데 도우미로 나왔던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일행 중 목사가 있어서 세례까지 주는 사건이 있었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도우미 학생들은 복음이나 세례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신학생들의 말에 따랐습니다. 신학생들은 짧은 시간에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학생들이 집에 가서 이야기를 했고 봉사활동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서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2. 메신저가 메시지입니다

이번 선교에는 집짓기사역, 미용봉사와 초등학교방문, 음식봉사가 주요 사역이였습니다. 선교사님은 베트남 정부와 관계를 맺고 정부와 연계하여 집 짓기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지역별 읍사무소와 연계하여 가난한 사람을 선정하고 골조공사가 해 두면 우리는 두 시간 정도 페인트칠을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역 시작 전에 먼저 선정된 가족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고엽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아이를 둔 가정이었고 비가 새는 천막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정은 복권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베트남에서 복권을 파는 사람은 거지 바로 윗단계라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복권도 안팔리고 물새는 천막에서 어린 두 아이가 비를 맞을까 걱정을 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인은 우리를 보자 마자 얼굴이 벌개지며 울기 시작하고 남편은 얼굴을 돌렸지만 나는 그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가정형편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단기선교팀 사람들 모두 울었습니다. 그냥 그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왜 우리가 여기에 와서 페인트칠을 할까요? 왜 여기까지 와서 밥을 해야 할까요? 그에 대한 답이 우리가 흘리는 눈물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집짓기 봉사는 집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집짓기와 봉사로 표현되는 것이었습니다. ‘선교는 언제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 찾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지금 순간순간에 선교를 하고 있다고. 우리의 삶이 선교라고. 그리고 선교가 있기 전에 구제가 있었다고.

 

3.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나는 복음은 세상의 영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업이 사람관계에서 나오듯이 복음도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사님들은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교지 현지인들과의 관계형성이고 관계를 위해서는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단기선교에도 예정에 없던 만남이 있었습니다. 때와 시기를 너무 잘 맞추어서 10년에 한번 있을법한 성탄축하예배와 베트남축구 길거리 응원에 참여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성탄축하예배는 수 만 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런 집회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였는데 하나님은 베트남을 사랑하셨고 눈동자처럼 품고 계셨으며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또 박항서 집사님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동남아시아컵 결승전을 길거리에서 응원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만남이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이번 단기선교팀은 시니어 중심이어서 60~70대 장로님 권사님이 중심이셨습니다. 그런데 봉사하는 곳이 외진 곳에 있어서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봉사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많은 짐을 올리고 내리고 옮기는 것도 이분들이 제일 앞장서서 하셨습니다. 이분들을 만난 것이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나는 다문화가정의 구제사업이나 장학사업을 통해 다문화가정을 지원하고 이런 가정들이 모국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통로로 사용하게 하는 선교사역을 꿈꾸고 있습니다. 1억명의 인구 중 70%가 30세 이하인 젊은 베트남 학생들을 보면서 그런 선교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베트남 선교현장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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