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배운 침묵

by 지니

사회복지 일을 하며
나는 말을 많이 배울 줄 알았다.
설명하는 말,
설득하는 말,
위로하는 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장 많이 연습하게 된 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처음엔
침묵이 두려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무책임해 보일까 봐,
일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상대가 더 불안해질까 봐.
그래서 나는
자꾸 말을 덧붙였다.
이해한다는 말,
괜찮아질 거라는 말,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말.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말들이
상대를 편하게 하기보다는
상대를 더 빨리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는 걸.
행정이라는 자리는
사람에게
당장 답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준이 있고,
절차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앞에서
사람은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무언가라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때
가장 쉬운 선택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규정상 어렵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 말들은
틀리지 않았지만
늘 필요한 말은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말을 멈추고
그냥 앉아 있었다.
상대가 말을 꺼낼 때까지,
숨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그 시간을
견디듯 함께 버텼다.
그 침묵이
상대를 더 불안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 침묵 안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했다.
중간에 끊기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채로,
해결을 요구하지 않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의 속도를 존중하는 선택이라는 걸.
그 이후로
나는 침묵을 다르게 사용하게 되었다.
답을 찾기 전의 침묵,
결정을 미루는 침묵,
상대가 자기 말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침묵.
그 침묵은
일을 늦추는 방해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공간이었다.
사회복지행정을 하며
나는
능숙한 설명가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말을 줄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일을 더디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고,
오해를 부르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침묵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 침묵을
집으로 가져왔다.
아이 앞에서
당장 답을 주지 않고,
옳고 그름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옆에 앉아 있는 선택.
그 선택이
아이를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아도,
덜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보다 먼저 배운 침묵은
나를
유능하게 보이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을
문제로 만들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건
이 일을 하며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태도다.
나는 지금도
완벽한 말을 찾지 못한다.
다만
말보다 앞서
침묵을 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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