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대신 남겨둔 시간

by 지니

사회복지 일을 하며
나는 수없이 많은 질문 앞에 서 왔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
무엇이 맞느냐는 질문,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
행정과 회계는
그 질문에 비교적 분명한 답을 요구했다.
정해진 기준,
맞고 틀림,
지켜야 할 순서.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정답을 찾는 사람이었다.
빨리 결정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흐릿한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
그게
일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정답이 오히려
사람을 더 다치게 하는 순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내려진 답,
너무 정확한 설명,
너무 단정한 결론.
그 앞에서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멈춰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정답을 미뤘다.
모른 척이 아니라,
피한 것도 아니라,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선택이었다.
답을 주지 않는 대신
시간을 남겨두는 선택.
그 시간 안에서
사람은 종종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요구였던 말이
사정이 되고,
분노처럼 보였던 감정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변화가
정답보다
훨씬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같은 장면을
집에서도 보았다.
답을 재촉할수록
아이는 더 말이 없어졌고,
기다릴수록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꺼냈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에게도
정답보다
시간이 먼저 필요했구나.
정답을 준다는 건
어쩌면
상대를 설득하려는 일이고,
시간을 남겨둔다는 건
상대를 믿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쉽게 답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모르겠다는 말,
조금 더 생각해보자는 말,
오늘은 여기까지 두자는 말.
이 태도는
유능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결정을 미루는 사람처럼,
확신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 시간 덕분에
누군가는
무너지지 않았고,
누군가는
스스로 일어날 준비를 했다는 걸.
사회복지행정과 회계를 하며
나는
정확함을 배웠고,
현장으로 오며
조심스러움을 배웠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만난 자리에서
나는
정답 대신
시간을 남겨두는 사람이 되었다.
정답은
언제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누군가에게 한 번만 주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늦게 말하고,
조금 더 기다린다.
정답 대신 남겨둔 시간.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비켜준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을
여전히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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