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믿음을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
방향을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신앙을 이야기할 때
확신을 떠올린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단단한 고백,
의심 없는 선택.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내가 교회에 가기로 한 이유는
믿음이 단단해져서가 아니라
더 이상 혼자 결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의 미래를
이용자의 하루를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까지.
모든 걸
내 판단으로만 끌고 가기엔
조금 벅찼다.
그래서 나는
정답을 찾기보다
방향을 하나 정해두고 싶었다.
지금 당장 옳은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를 더 고립시키지 않는 방향.
이용자와 함께
교회에 앉아 있었을 때
나는 특별한 감정을 기대하지 않았다.
깨달음도,
감동도,
변화도.
그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찾고 있던 건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였다는 걸.
신앙은
누군가에게는 중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선택지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대단한 고백으로 포장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지금의 나에게
조금 숨 쉬기 편한 방향이
이쪽이라는 사실만
말해두고 싶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늘
앞서 가는 길을 보여주려고 했다.
일을 하며
나는 늘
정답을 제시하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둘 모두가
나를 지치게 했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앞서서 끌기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이에게도,
이용자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믿음은
나중에 생겨도 괜찮다.
지금은
방향만 있으면 된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로는 더 이상
가지 않겠는지.
오늘의 나는
완성된 신앙인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은 사람이다.
그 방향이
조금씩
삶을 덜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면,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믿음이 아니라 방향.
나는 지금
그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다.
이용자와 함께,
아이와 함께,
그리고
나 자신을 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