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는 아직 시작 중

by 지니

항해를 시작했다고 말하기엔
아직 모든 게 낯설다.
방향은 정했지만
목적지는 선명하지 않고,
바다는 잔잔하기보다
그날 그날 얼굴이 다르다.
그래도 나는 안다.
출항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고,
이용자들과 같은 배에 올랐다.
누군가는 앞에 서서
길을 정해주길 기대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저 옆에 앉아
같이 흔들려 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어떤 선장이 될지는 모른다.
다만
혼자서 방향을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결심만은 분명하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배웠다.
빠른 항해가
항상 안전한 건 아니라는 걸.
지름길이
늘 덜 아픈 길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속도보다
같이 가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오늘도
이용자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시간을 보냈다.
대단한 성과는 없었고,
눈에 띄는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아마
누군가를 앞세우지도,
뒤에 남겨두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도
일도
육아도
요즘의 나는
다 같은 감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답을 들고 나아가기보다
방향을 함께 확인하는 일.
그게
지금의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항해 방식이다.
항해는
언제나 준비가 끝난 후에
시작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불안한 상태로,
완벽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냥 떠밀리듯 시작된다.
중요한 건
완벽한 지도보다
배에서 내려버리지 않는 선택이라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안다.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의심도 들 것이고,
다시 방향을 고쳐 잡아야 할 날도
분명히 올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항해란 원래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일이니까.
나는 지금
누군가를 데리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가는 사람으로
항해를 배우는 중이다.
아이와,
이용자와,
그리고
나 자신과 함께.
항해는 아직 시작 중이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같은 배에 잘 올라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내일의 바다는
내일 다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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