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만들어낸 스쳐 지나가는 소유에 대한 생각
분명히 내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는데
내 것이라고 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
언택트 시대의 출발은 쇼핑의 온라인화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온라인 쇼핑몰이 꿰찼다. 이 정도면 안방에 있던 마님을 툇마루로 쫓아냈다고도 보일 정도이다. 온라인 쇼핑은 점차 진화해서 하루 배송, 반나절 배송에 이르렀다. 늘어나는 온라인 쇼핑 빈도수와 더불어 늘어나는 것이 있다. 바로 하루살이처럼 하루만 살아가는 택배 상자다.
물건을 사면 적게는 한 개 많게는 두 개씩 상자가 겹쳐 올 때도 있다. 옆에서는 골판지가 모자라서 택배박스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버려진다. 스티커에 몸에 찢기거나 분해당해 납작해지면서. 개인적으로 나는 내 방에 수납공간이 적고 조만간 독립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택배박스 재활용률이 높은 편이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택배박스에 바퀴벌레가 알을 까니 물건을 꺼내자마자 바로 버려야 한다라고 하지만 지금껏 바퀴벌레가 나온 적은 없다. 일단 사용하기 전에 항균 스프레이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뿌렸으니까. 50%는 필요해서 50%는 너무 아까워서 자체 재활용을 했던 것 같다.
택배박스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내 번호도, 심지어 주소까지 적혀있다. 어떠한 내 물건에도 적혀있지 않은 상세한 정보가 내가 이 물건의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 소유가 되는 것은 잠깐, 찰나의 시간뿐이다. 곧 내용물에 밀려 납작하게 펼쳐진 뒤 재활용 센터로 곧장 이동하게 된다. 만약 지금 코로나 19가 없다면 이런 쓰레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 마트로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연일 확진자가 1,000명 이상 뜨고 있는데 마트를 가는 것은 조금 꺼려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택배, 이 시대 제로 웨이스트 지향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택배를 아예 안 시키고 살 수는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게 선물을 택배로 보낼 수도 있는 것이고, 급하게 다음날 아침 필요한 물건을 로켓 배송이나 샛별 배송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며 직장인이라면 절대적으로 공감할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택배 근무자들에게 가혹함을 주며 누리는 잠깐의 행복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간혹 좋아하는(대체로 비싼) 아이스크림을 세일할 때에는 그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쇼핑 몇 번만 하면 금세 내 방은 택배 상자의 무덤이 된다. 각자 달려온 곳은 다르지만 종착지는 결국 내 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는 곳은 재활용 쓰레기장 또는 일반 쓰레기장이다. 이렇게 크고 많이 움직이는 일회용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나만의 룰을 하나 만들어 지켜보고자 했다.
1. 물건을 적게 시킨다.
애초에 인터넷 쇼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언택트 시대, 코로나 이후 비대면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지만 최대한 주문하는 빈도수를 낮추는 것에 의의를 둔다. 한 달에 열 번 주문할 것, 그중에서 잘 살펴보면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아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쇼핑 하나하나에 신중을 가하는 것이다. 사람인지라 100% 완벽하게 모든 욕망을 지워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택배 상자를 줄일 수는 있었다.
2. 묶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묶어서 주문한다.
로켓 배송의 시조새 격인 쿠팡은 단 하나를 주문해도 무료로 다음날 배송해준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가볍고 하찮은 물건이라도 비닐 포장까지 완벽하게 해서! (필자는 일례로 데싱디바를 주문했다가 그에 약 6배가 되는 크기의 비닐도 함께 받았다.)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주문하면 우리가 버릴 수 있는 쓰레기의 총량 자체가 늘어나게 된다. 컬리의 샛별 배송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냉동/냉장 식품을 나누어서 포장해주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세 개 시켰는데 세 개가 모두 다른 박스에 들어서 오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냉동식품(아이스크림), 냉장식품(소고기), 일반 제품(히말라야 핑크 솔트)을 주문했는데 택배 박스가 세 개가 와서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냉동식품인 아이스크림의 경우 보냉을 위해 하나의 종이상자가 더 들어가고 드라이아이스를 포장하는 종이 비닐과 보냉재가 더 들어간다. 손바닥만 한 아이스크림 세 개 먹고자 했다가 쓰레기에 파묻힐 뻔했다. 그래서 이제는 냉동식품은 냉동식품끼리 최대한 묶어서 주문하고 있다.
*다만 컬리의 경우 다음 주문 시 이전 주문의 택배 상자를 펼쳐서 놓으면(최대 3개) 수거해서 재활용센터에 직접 가져다준다고 한다.
3. 가까이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가까이서 구매하자.
실제로 의외로 우리 집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의 지분율은 상당히 높다. 일반 식재료는 집 앞 마트, 집 근처 대형 마트가 더 저렴할 때도 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택배 상자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으니 지구를 위해서, 본인을 위해서 움직여 보는 건 어떨까. 아직은 코로나 2.5단계로 마트 정도는 다녀올 수 있는 여건이니 산책하는 셈 치고 주위에서 구매할 수 있는 건 직접 구매해도 좋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자주 먹는 6개 포장 포켓 샐러드 대신에 마트에서 500g짜리 샐러드용 채소 모둠을 사서 먹는다. 소분하는 게 귀찮고 가끔 무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비닐 쓰레기와 택배 상자를 줄일 수 있다.
나 스스로 지키고자 만든 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들이 더 많다. 그리고 택배 상자를 줄이고자 하는 행동이 더 나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택배로 상하지 않는 종류(의류, 잡화, 세제 등등)의 물건을 시킬 때는 택배 상자만 남게 되지만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꼭 함께 오는 짝꿍 쓰레기가 있다. 바로 보냉 제이다.
겨울철에는 춥기 때문에 보냉재의 개수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여름철만 되어도 단열재인 스티로폼과 무슨 약품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는 얼린 상태의 보냉제가 무차별적으로 들어간다. 근래에는 SSG에서는 얼린 500ml 생수 두 개를 보냉재로 쓰고, 쿠팡 프레쉬와 마켓 컬리에서는 하수구에 흘려보내도 되는 물을 보냉재로 사용하며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여름이 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신선식품을 최대한 마트에서 구매하고, 한 번에 몰아서 구매하고, 적은 빈도로 주문하면 그 수에 비례해서 함께 오는 보냉재도 적게 들어오게 된다. 아직 생수나 물이 아닌 일반 보냉재를 사용하는 곳도 많으니 최대한 물로 된 보냉재를 사용하는 곳에서 적게 주문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3단계로 격상된다면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인 택배가 줄어들 기회는 사라져 가고 말 것이다.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코로나의 종식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필자는 곧 이사할 예정인데 짐이 애매하게 많아 지금부터는 택배 상자를 모아서 거기에 차곡차곡 이삿짐을 넣을 생각이다. 일회용으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원이기에 나라도 재활용하려고 한다. 집을 옮겨가는 그 과정이 끝나면 어차피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지겠지만 말이다. 언제쯤 택배 상자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